"학교는 와야 해" 말했을 뿐인데…민원 시달리다 숨진 제주 교사[뉴스속오늘]

박효주 기자
2026.05.22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지난해 5월27일 오후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고 현승준 교사 분향소에 추모 쪽지가 붙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5월22일 제주 제주시 한 중학교에서 40대 교사 현승준씨가 교내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 교사는 생전 자신이 지도했던 학생 가족으로부터 장기간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정부와 교육 당국이 교권 보호 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현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학교는 나와라"…생활지도 했더니 민원

현 교사는 사망 전날 밤 학교에 남은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 않자 그의 아내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22일 오전 0시46분쯤 학교 창고에서 숨져 있는 현 교사를 발견했다. 교무실에서 나온 유서에는 지도 학생 가족과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현 교사는 학기 초부터 학생 A군이 몸이 아프다며 학교에 나오지 않자 여러 차례 상담과 생활지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공개한 메신저 대화를 보면 현 교사는 A군에게 "학교는 나와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들렀다가 학교에 오라"고 말했고, 흡연 사실에 대해서는 "담배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지도를 했다.

지난해5월22일 오전 제주 한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가 생전 무단결석 등을 한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대화 일부. /사진=뉴시스

민원이 시작된 것은 3월 초다. A군 누나는 현 교사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해 "동생이 선생님 때문에 학교 가기를 힘들어한다", "폭언을 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원은 현 교사가 숨지기 직전인 5월18일까지 계속됐다. 하루 10통 넘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고, 이른 아침이나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연락이 왔다. A군 가족 측은 제주도교육청과 제주시교육지원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현 교사가) 스트레스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경찰 "극심한 스트레스 준 건 맞지만 범죄 행위 아냐"

사건 이후 경찰은 학생 가족 행위가 협박이나 스토킹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수사했다.

경찰은 학생 가족 휴대전화를 전자 감식하고 학교장과 교감, 동료 교사 등 관계자들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현 교사가 사용한 노트북과 업무용 PC, 업무 수첩 등도 확보해 분석했다.

약 6개월간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결국 학생 가족 측에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복된 민원이 현 교사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것은 맞지만 협박죄가 성립할 정도의 해악 고지나 공포심 유발 의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사회 통념상 처벌할 수 있는 범죄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 교사가 학교 업무에 대한 어려움, 주말 등 잦은 근무와 함께 학생 가족 측 민원이 제기된 상황까지 겹치면서 높은 수준의 불안감과 심리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 마감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심리 부검 결과도 반영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해5월27일 오후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고 현승준 교사 사망 사건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 교권 보호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 발표 이후 유족과 교육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는 "반복된 민원이 고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라고 판단했다"며 "밥도 먹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도록 한 상황이 과연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인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 역시 "아들은 죽었는데 상대는 죄가 없다고 한다"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느냐"고 호소했다.

교육계 "실패한 민원 대응 시스템"

교육계는 교사 개인이 반복 민원에 사실상 홀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학교마다 교감 등을 중심으로 한 '민원 대응팀'을 만들어 악성 민원을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좋은교사운동은 "현승준 선생님 순직 사건은 실패한 민원 대응 시스템과 이를 방치한 교육청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고 했다.

현 교사는 순직 1주기를 맞이한 교육계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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