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벌금을 내지 못하는 수형자를 노역장에서 일하게 하는 '노역 제도'가 구멍 투성이다. '황제노역' 문제는 여전하고 일도 안하면서 벌금을 감면 받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몸이 좋지 않은 노역수를 치료하기 위해 벌금보다 많은 세금이 쓰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1953년 이후 큰 틀이 바뀌지 않은 노역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69조는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해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 해당 규정은 형법이 만들어진 1953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교도소 내 작업장에서 쇼핑백 봉투접기나 박스 포장·봉제· 등 단순 노무에 참여하게 된다. 교정시설 내 청소나 환경미화를 담당하기도 한다. 오전·오후로 나눠 하루 4시간씩 진행된다. 중간에라도 남은 벌금을 납부하면 그 즉시 노역이 끝난다.
하지만 노숙인이나 기초생활 수급자들 일부는 노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건강 이상 등을 호소하면 정부가 치료해줘야 한다. 받아야할 벌금보다 병원비로 나가는 세금이 더 많은 경우도 발생한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어도 노역수가 몸이 좋지 않다고 주장하면 노역을 시킬 수 없다. 이 경우 일반 수형자와 분리돼 별도의 방에서 시간만 보내게 된다.
황제노역 문제도 여전하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는 벌금만 1465억1000만원이다. 라 전 대표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100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고 벌금은 하루 1억4651만원씩 감면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534억7615만원이다.
교정본부 과밀화가 심각해지면서 노역수에게 시킬 일도 없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과밀수용 문제가 심각한데 노역는 계속 늘어난다"며 "시킬 노역이 변변찮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벌금 미납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학계에서 종종 나온다. 벌금 일수를 정해놓고 피고인의 소득·재산에 따라 1일 벌금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벌금은 피고인이 낼 수 있는 수준에 가깝게 산정된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봉사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노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봉사를 잘 할지는 의문"이라며 "실효성이 있는 노역제도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 61세 김모씨는 편의점에서 2000원짜리 아이스크림 두 개를 훔쳐 벌금형을 받았다. 김씨는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고 결국 노역 30일에 처해졌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교도소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부전증 등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교도소가 쓴 김씨 의료비는 1480만원에 달했다.
1년여 전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교정당국 관계자들은 꽤 잦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액 벌금 미납자 상당수가 노숙인, 알코올 중독자 등이라 노역하기 어려운 건강 상태인 경우가 많아서다. 교정기관이 나서 치료를 돕다보면 노역 기간이 끝나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세금으로 범죄자들 병원비만 내주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말을 기준으로 수용 중이거나 출소 후 1년 이내인 노역수 중 외부 의료시설 진료 및 입원으로 의료비를 과다 지출한 대상자 14명의 평균 입원 기간은 11일, 국가예산으로 진료한 의료비는 약 9800만원이다. 1인당 평균 700만원을 쓴 셈이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이유들로 의료시설을 찾는 노역수가 적지 않다.
노역수를 수용하고 건강검진·진료·약물치료 등을 제공해야 하는 교정기관 업무상 병원비 부담은 불가피하다. 노역수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교정기관이 책임질 의무가 있어서다.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해 대응을 미뤘다가 문제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5년간 노역수 12명이 질병 등 사유로 교정시설 내에서 숨졌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안 그래도 과밀수용 문제가 심각한데 노역수로 들어온 사람들의 병원 치료를 위해 3명씩 붙어서 나가면 인력 부족 문제는 더 심해진다"고 했다.
법조계 안팎에서 내야하는 벌금보다 수용·의료·관리 비용이 더 들어가는 이른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동교도소장을 거친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은 "노역수 대부분이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경우가 많아 일할 수 없는 노역수가 상당히 많다"며 "오히려 교도소에 와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응급 치료를 받으면 상당한 병원비를 국가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령화와 노인 인구의 빈곤이 심화됨에 따라 제도 전반을 다시 살펴야 할 필요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관점도 제기됐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령화가 심각한 일본의 경우 징역과 금고를 나누는 실익이 없다는 지적으로 인해 구금형으로 통합했다"며 "한국도 고령화의 문제로 인해 노역이 갈수록 어려워질텐데 기존의 관점을 전환해 제도 개선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은 수형자 중 현금으로 벌금을 납입하는 비율은 전체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현금 납입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대신 교정시설 노역장 유치로 대체하는 비율이 급증했다. 하지만 교도소 과밀화 문제가 심화하면서 노역수들에게 줄 일거리가 부족해졌다. 사실상 국가가 무상 숙식을 제공하며 벌금을 면제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27일 '2025 검찰연감'에 따르면 벌과금 집행 내역 중 현금납입 비율은 2015년 76.75%에서 2024년 54.22%까지 줄었다. 10년 사이 약 20%포인트 하락했다. 반대로 교정시설 노역장에서 벌금을 대신하는 유치집행 비율은 10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2015년 14.33%에 그치던 유치 집행 비율은 2024년 43.94%로 급등했다.
노역장 유치가 많아졌지만 교정시설 과밀화로 노역수들에게 줄 작업이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장기 복역 중인 기결수에게 배정할 노역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교정시설 1일 평균 수용 인원은 2024년 처음으로 6만명을 초과했다. 2016년 5만6495명이었던 1일 평균 전체수용인원은 2026년 3월31일 기준 6만3060명으로 늘었다.
한 교정본부 관계자는 "현재 기결수도 일할 자리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역수가 계속 들어오니 노역수에게도 시킬 일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노역수에게 시킬 일이 없으면 노역수들은 교정시설에서 무상 숙식을 제공받고 벌금까지 면제받게 된다. 벌금형이 경제적 타격을 주는 형벌인데 교도소에서 먹고 자며 벌금을 탕감받는 기형적인 구조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형벌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교정시설 과밀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말 기준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에 유치된 환형 유치된 노역수는 1505명에 달한다. 새로 지어지는 창원교도소 수용 인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안동교도소장을 거친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은 "교정시설이 이미 과밀화된 상태에서 인원이 계속 공급돼 분명 이런 현상이 악화하고 있다"며 "노역제도가 형벌로서 전혀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