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1일 오후 8시 15분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육군 제22보병사단 GOP(일반전초) 한 소초에서 주간 경계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도빈 병장(당시 22세)이 동료 장병들을 향해 장전된 K2 소총을 10여발 난사했다. 병사와 부사관 등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벌인 이례적인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목숨을 잃은 5명의 병사는 순직자로 인정됐고 임 병장은 우리나라 마지막 사형수가 됐다.
사건이 벌어진 6월21일 오후 2시부터 7시 55분까지 임 병장은 주간 경계 근무를 섰다.
그는 오후 4시쯤 순찰일지에 자신을 가리키는 그림과 욕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온통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가 이렇게 사회에 나가서 살아봤자 똑같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살 바에야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 병장은 근무를 마친 후 무기를 반납하지 않았고 약 20분 후 동료 장병들을 향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2를 난사했다. 이후 K2 소총과 실탄 60여발 등으로 무장한 채 탈영했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주간 근무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22사단은 사건 발생 2시간 후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위기대응반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진돗개 하나는 위협상황이 실제 일어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가장 높은 단계의 경계 조치다. 임 병장의 예상 도주로에 검문소가 운영됐고 수색과 체포 작전이 실시됐다.
야간 시간대라 수색이 쉽지 않았다. 병사들이 서로를 임 병장으로 오해해 총격전을 벌이면서 2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틀 뒤인 6월 23일 오전 8시 20분. 군은 임 병장을 찾았다. 오전 11시 25분부터는 임 병장의 아버지와 형도 와서 투항을 유도했다.
임 병장의 아버지는 40시간 넘게 도망 다니던 아들과 전화 통화에서 "부모 심정이 무너진다"며 자수를 권했다. 그러나 임 병장은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며 소지하고 있던 K-2 소총으로 가슴을 쏴 자살을 시도했다.
총탄은 폐와 심장을 빗나갔다. 출혈이 많았지만 생명에 이상은 없었다. 그는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고 조사를 위해 국군기무사령부로 이송됐다.
임 병장의 유서에는 부대 내에서 상하 계급 모두에게 집단 따돌림을 받아 '계급 열외'로 힘들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전역을 단 88일 남겨둔 상황에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부정확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금품 갈취를 당하는 등 괴롭힘이 이어졌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수업 중에 집으로 와 주방에 있던 과도를 학교로 갖고 가려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돼 제지당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을 살해하려 했다고 회상했다.
이 일이 학교에 알려지며 괴롭힘은 더 심해졌고 결국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니다가 2012년 12월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는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군은 관심병사를 경중에 따라 ABC로 등급을 나누는데 A는 자살징후가 있는 특별관리 대상, B는 충분히 근무할 수 있는 중점관리 대상, C는 기본관리 대상이다.
임 병장은 2013년 4월 1차 인성 검사에서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지만 같은 해 11월 B급으로 조정됐다. GOP에 투입할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2013년 6월 병장으로 진급했고 두 달 후인 8월 부분대장을 달았다. 같은 해 11월 임무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지휘관 판단으로 초소에 투입됐다. 관심병사는 GOP 근무를 맡더라도 총이나 실탄을 다루는 업무에서는 배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임 병장은 GOP에 투입됐고 실탄을 지급받았다.
사건 이후 관심병사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국방부는 관심병사 제도를 폐지한 후 '도움 배려 병사'로 명칭을 변경했다. 도움 배려 병사는 각 부대에 지정된 관리책임 간부의 지도를 받고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 상담, 그린캠프 입소 등 조치를 받게 된다.
1심에서 군 검찰은 임 병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제1야전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계획 범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나이가 어리고 전과가 없으며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무고한 전우에 총구를 댄 잔혹한 범죄에 대해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피고인은 지난 6개월간 단 한 장의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 만을 호소해 사건의 책임을 동료에게 전가하고 회피했다"고 했다.
임 병장은 "따돌림과 괴롭힘이 원인이었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임 병장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임 병장은 61번째 사형수가 됐고 이후 사형수가 나오지 않아 우리나라 마지막 사형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