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태움'을 견디다 숨진 27세 간호사 고(故) 강수빈씨 사건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태움을 직접 목격한 한 환자가 국민신문고 등과 병원에 민원을 제기해 가해 간호사를 퇴사하게 만들며 많은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한 '정의구현' 사연이 전해졌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히는 악습을 뜻한다.
4일 뉴스1에 따르면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밤마다 태움을 당하고 있는 간호사의 표정과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도저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직장인 A씨는 입원 당시 병동에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고함치는 소리가 병실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는 "어제부터 병상까지 괴롭히며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더라. 왜 환자들이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냐"고 먼저 간접 피해를 호소했다. 이어 "오늘도 '태움 소리'가 들리면 국민신문고 보건의료인 민원과 병원 민원, SNS에 모두 제보하겠다. 불쌍해서 더는 못 봐주겠다"며 날을 세워 경고했다.
이후 A씨는 다양한 곳에 정식 민원을 제기하고, 관련 내용을 캡처해 병원 측 고충처리 창구에도 태움에 관련된 내용을 전달했다.
A씨는 "당하는 간호사는 너무 애처롭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며 "시간이 지나 그 간호사가 분리 조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저 부서를 옮긴 줄 알고 확인차 전화해 봤더니 병원 자체에서 퇴사 처리됐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최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의료계의 고질적 악습인 '태움'에 3년 가까이 시달리던 20대 간호사가 결국 퇴사 후 노동청에 진정을 냈으나, 가해자 3명 중 1명만이 훈계를 받고 마무리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같은 병원에서 같은 가해자로 지목되는 간호사에게 유사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또 다른 전직 간호사의 증언도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태움은)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고 규정하며 엄정 대응을 주문했고,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한편 대한간호협회는 고 강수빈씨 사망과 관련, 지난 2일 입장문을 내며 "태움 문화의 근본 원인은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이라며 "적정 인력 배치가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태움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환자당 간호사 배치기준 법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의사집단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3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인력이 부족하면 태움이 발생하고, 인력이 충분하면 태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간호사들의 논리는 업무 스트레스가 줄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률이 줄어든다는 건데, 그게 맞는다면 태움을 막기 위해 업무 강도 기준을 어느 정도로 설정해야 한다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소아청소년과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회장은 머니투데이에 "소아청소년과도 의사가 부족해 인력난에 허덕이지만, 구조 문제로만 돌리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오류를 범할 것"이라며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료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괴롭히는 행위는 정당화할 수 없는 명백한 '개인의 가해 행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협회 이홍준 부회장도 "간협의 주장처럼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이 환경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이를 태움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모든 책임을 구조에만 돌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생명을 다루는 긴박한 의료 현장이라는 특수성을 방패 삼아, 개인의 인성 결함이나 악습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포장해 온 구태의연한 문화가 태움의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력 부족이 태움의 원인이라면 의사들이 더 심했어야 한다"면서 "적정 인력 배치가 태움을 예방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한 간협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고인이 다니던 병원에서 태움을 당했다는 제보는 또 이어졌다. 2일 MBC 보도에 따르면 숨진 강씨 사건이 알려진 뒤 문제의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전직 간호사 20대 A씨는 "2022년 6월 해당 병원 응급실에 입사한 직후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수할 경우 선배 간호사가 바늘 등 의료기구를 바닥에 뿌린 뒤 모두 치우라고 지시했다"며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폭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A씨는 폭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른바 '시선 태움'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냥 계속 째려보는 거예요. 그 어떤 얼굴 표정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 끝에 결국 김 씨는 입사 3개월 만에 퇴사 후 의료계를 떠났다. 그는 "자다가도 심장이 뛰며 벌떡 일어났고 1년 동안 악몽을 꾸며 울부짖었다"고 당시 극심했던 고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