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입니다" 수어 한마디로…청각장애인 39명 얽힌 '특공 사기' 풀었다

고양(경기)=최문혁 기자
2026.07.26 07:00

[베테랑]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 최석분 경위·윤종현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61만건(2025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별관에서 최석분 경위(왼쪽에서 두 번째)와 윤종현 경사(왼쪽)가 팀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문혁 기자.

"경찰입니다." 엄지를 이마에 대고 검지와 중지를 펴 날갯짓하듯 움직이는 손짓. 독수리가 새겨진 모자를 쓴 모습을 표현한 수어로 '경찰'이라는 뜻이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의 경기북부경찰청에서 만난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 최석분 경위와 윤종현 경사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수어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청각장애인을 상대로 한 부동산 특별공급 사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직접 수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수어를 배우게 된 건 청각장애인 수십명이 연루된 전례 없는 부동산 사기 사건 때문이었다.

최근 경기북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대는 주택법 위반 혐의로 부동산 브로커 조직원 4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2020년부터 약 5년간 서울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를 포함해 전국에서 30채가 넘는 장애인 특별공급 아파트를 불법 분양받아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구속된 주범 A씨를 제외한 39명은 모두 청각장애인이었다. A씨는 청각장애인을 조직적으로 모집한 뒤 이들 명의로 장애인 특별공급 아파트를 청약했다. 당첨된 분양권은 전매 제한 기간 동안 직접 관리하다 제한이 풀리면 수천만원의 웃돈을 받고 되팔았다.

사건의 시작은 전혀 다른 수사에서 발견된 계좌 12개였다. 7년째 금융범죄를 수사해온 최 경위는 별개의 투자 리딩방 사건을 들여다보던 중 계좌 패턴에서 수상함을 발견했다.

최 경위는 "수백, 수천개 계좌를 분석해봤지만 청각장애인 명의의 계좌 12개가 동시에 있는 건 처음이었다"며 "처음엔 장애인 단체에서 범죄조직에 계좌를 팔아넘긴 게 아닌가 의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는 곧 난관에 부딪혔다. 참고인과 피의자 대부분이 청각장애인이어서 수어 통역사나 필담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자들은 수사에 비협조적이었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사건에 투입된 윤 경사는 수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윤 경사는 "농인 사회는 '청인'이라고 표현하는 비장애인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며 "경찰도 청인이라면 철저히 배척하다 보니 폐쇄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단한 인사라도 수어로 건네면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수사하며 틈틈이 유튜브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툴지만 직접 수어로 인사를 건네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뢰가 쌓이면서 한 청각장애인 계좌 명의자가 제보를 결심했다. 이를 계기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조사 결과 브로커 A씨 뒤에는 청각장애인 명의를 공급한 B씨가 있었다. B씨는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였다. 그는 농인 사회와 쉽게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청각장애인들을 속여 명의를 넘겨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관들은 이번 사건의 피의자 중에는 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용당한 청각장애인도 적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최 경위는 "명의를 넘긴 청각장애인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었다"며 "청약에 당첨되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되면서 지원이 끊겨 생계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윤 경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방과 수사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다단계 등 사기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현실을 체감했다"며 "원활한 수사를 위해서라도 제도적 지원과 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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