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폭행한 삼촌이 가위를 들고 위협하자 부엌칼을 들고 맞선 조카에게 특수협박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했다. 흉기를 든 행위만 떼어내 판단할 게 아니라 폭행이 시작된 경위와 양측의 행동, 흉기를 들게 된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박씨는 평소 왕래하던 삼촌 A씨가 자신을 폭행하자 이에 대항해 주먹으로 A씨의 얼굴을 때리고 부엌칼을 가져와 "죽고 싶으면 너나 죽어, 죽고 싶으면 와 봐라"고 말하며 위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은 박씨가 어린 시절 A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가족들에게 알리면서 시작됐다. 이에 격분한 A씨가 박씨의 집을 찾아가 박씨를 폭행하면서 몸싸움으로 번졌다.
A씨는 거실 서랍장을 열어 서랍 2개를 박씨에게 던졌고, 이 과정에서 박씨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다쳐 약 3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이어 박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 차례 때렸다.
A씨는 식탁에 있던 가위까지 집어 들었고 박씨는 싱크대 위에 있던 부엌칼을 가져와 A씨와 대치했다. 박씨는 직접 112에 신고했고 A씨가 가위를 내려놓은 뒤에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칼을 든 채 부엌에 있었다.
수사기관은 둘의 몸싸움 과정에서 박씨가 칼을 들고 A씨를 위협한 행위를 특수협박죄로 판단해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A씨가 가위를 내려놓은 뒤에도 박씨가 칼 들고 있었단 이유에서였다.
1심은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박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도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 법원은 A씨가 112 신고 이후 가위를 내려놓았는데도 박씨가 계속 칼을 들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당시 박씨가 선택한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박씨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는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보고 벌금 3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박씨의 행위가 형법 제20조가 정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봤다.
대법원은 정당행위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행위 자체만 떼어 평가할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이르게 된 일련의 구체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는 다툼의 발단과 경위를 봤을 때 A씨의 책임이 더 크며 박씨가 한 행위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반면 실제 피해는 박씨가 더 크게 입었다는 점도 고려했다.
A씨가 예고 없이 박씨의 집을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고 가위를 들어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상황에서 박씨가 칼을 든 것은 계속되는 부당한 공격에 맞선 수동적·소극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박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며 원심이 위법성 조각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