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들이 아예 지도 만들었다…'천룡인 아파트' 법적 문제는?

배달기사들이 아예 지도 만들었다…'천룡인 아파트' 법적 문제는?

김소영 기자
2026.08.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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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를 상대로 부당한 요구를 자행하는 '천룡인 아파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배달기사를 상대로 부당한 요구를 자행하는 '천룡인 아파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배달기사를 상대로 부당한 요구를 자행하는 이른바 '천룡인 아파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천룡인 아파트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속 특권계급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배달노동자에게 아파트 출입 시 헬멧을 벗으라고 하거나 출입명부에 개인정보를 적게 하는 등 과도한 출입 절차를 요구하는 일부 아파트를 빗댄 말이다. 라이더들이 기피하는 '아파트 블랙리스트'인 셈이다.

배달원에 헬멧 탈착·인적사항 요구하는 천룡인 아파트

천룡인 아파트라는 단어 자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배달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2020년대 초 처음 등장했다. 당시 배달노동자들은 본인들에게 갑질을 일삼는다는 의미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 '천룡인 마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는데, 최근 한 유튜버가 라이더들에 대한 부당 대우 실태를 폭로하면서 해당 리스트가 재조명됐다.

부산 지역에서 배달일을 하는 유튜버 A씨는 지난달 아파트 측의 과도한 요구에 결국 배달을 포기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아파트 관리 직원은 A씨에게 헬멧을 벗고 인적사항을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A씨가 이를 거부하며 "1층에 음식을 두고 가겠다"고 맞서자, 배달시킨 입주민은 '음식을 문 앞까지 가져다주지 않을 거면 배달료를 받지 말라'는 취지로 응수해 공분을 샀다.

이후 A씨 사연은 배달노동자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라이더들은 각 지역 천룡인 아파트에서 겪은 저마다 경험을 털어놨다. "배달하려면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오토바이 열쇠를 맡기라더라", "빗물 때문에 입주민이 넘어질 수 있다며 우의를 벗으라는 곳도 있었다", "단지 내 오토바이 진입이 불가한 곳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라이더는 엘리베이터도 화물용만 이용해야 하는데 입주민과 동승도 못 하게 해 현타 왔다" 등 주장이 나왔다.

'천룡인 아파트' 지도도 등장…그러나 '콜 피하기' 어려운 구조

서울 지역 천룡인 아파트 분포 지도. /사진=네이버지도 갈무리
서울 지역 천룡인 아파트 분포 지도. /사진=네이버지도 갈무리

라이더들은 커뮤니티에서 지역별 천룡인 아파트 리스트를 업데이트 해 공유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엔 서울 지역 천룡인 아파트를 모아 놓은 지도도 등장했다. 여기엔 서초구 반포동·방배동·잠원동·서초동과 강남구 논현동·도곡동·대치동 등 56개 아파트가 포함됐다. 이밖에 동래구·남구·동구·해운대구 등 부산 아파트 수십 곳도 천룡인 리스트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라이더들이 천룡인 아파트가 분포한 지역의 콜(호출)을 거절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배달노동자들은 애초에 콜 수락 전까지 배달지 상세 주소를 볼 수 없을뿐더러 수락률·실적에 따른 등급이 낮은 경우 좋은 조건의 콜을 우선 배정받을 수 없고, 거절률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페널티가 주어져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정보 수집·이용, 미리 안내 안 했다면 법 위반 소지"
라이더들에게 사전에 개인정보 수집·이용 목적과 수집 항목, 보유 기간, 수집을 거부할 권리 등을 안내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진=뉴스1
라이더들에게 사전에 개인정보 수집·이용 목적과 수집 항목, 보유 기간, 수집을 거부할 권리 등을 안내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진=뉴스1

아파트 측은 까다로운 출입 절차가 '입주민 안전과 보안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실제 법적 문제는 없을까.

김은진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아파트 측이 이름, 연락처, 소속, 방문목적, 차량번호 등 정보를 요구하는 것 관련 "개인정보 수집·이용 목적과 수집 항목, 보유 기간, 수집을 거부할 권리 등을 사전에 정보 주체인 라이더에게 안내하지 않았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나아가 법 위반 중대성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는 게 김 변호사 설명이다.

아파트 측의 헬멧 탈착 요구에 대해선 "단순히 입주민이 공포를 느끼니 헬멧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건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당한 요구"라며 "다만 방범·안전관리 차원에서 폐쇄회로(CC)TV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탈착을 요구하는 건 적법하다. 얼굴도 생체 정보이므로 CCTV 영상을 목적 외 활용하거나 보관 기간을 초과했다면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 노조, 개보위·인권위 진정 계획…배민·쿠팡 "지원 강화"
배달플랫폼들도 라이더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배달플랫폼들도 라이더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배달라이더 노동조합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구교현 지부장은 우선 배달원 개인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아파트 행태를 조사해 달라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라이더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지, 수집한 정보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재진정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라이더유니온은 2021년 배달원들에게 갑질을 일삼은 아파트 103곳의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인권위 진정을 냈으나 인권위는 개인 간 갈등이라 개입할 수 없다며 각하 처분한 바 있다. 구 지부장은 "헬멧 탈착처럼 비입주민 중에서도 라이더들에게만 요구하는 차별적 행위에 대해 인권위에 다시 진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달플랫폼 측도 라이더 권익 보호에 힘쓰겠다고 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현재 라이더들을 위한 법률·심리 상담 지원부터 산재보험 안내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지원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쿠팡이츠도 자체 라이더 지원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달대행사를 이용하는 요기요 측은 보안 문제로 라이더 진입이 어려운 일부 신축 아파트를 대상으로 2024년부터 로봇 배달을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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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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