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봐요" 매일 지나쳐도 몰랐다…광복절에도 외면받는 독립운동 표석

최문혁 기자, 조유정 기자
2026.08.15 06:01

항일 독립운동 표석 '서울 시내 73개'…영어 설명은 제각각
공사장 앞 홀로 남겨진 표석, 쏟은 음료 자국부터 정체 모를 낙서까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서문 건너편 광장에 '박자혜 산파 터' 표석이 세워져 있다./사진=최문혁 기자.

광복절을 하루 앞뒀던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서문 건너편. 광복절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인 광장 한쪽에 '박자혜 산파 터'라고 적힌 작은 표석이 있었다. 박자혜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간호사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부인이기도 하다. 이곳은 박 선생이 산파원(산부인과 병원)을 열었던 자리다.

무릎 높이의 이 표석은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벽돌 기둥에 밀착해 설치돼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김모씨(67)는 "탑골공원이랑 동묘를 일주일에 몇 번씩은 오는데 표석은 처음 본다"며 "기둥에 붙어있어서 보고도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역사적 의미가 있으나 도시 개발 등으로 그 흔적이 사라진 장소를 알리기 위해 표석을 설치하고 있다. 건물이나 도로 때문에 본래 위치에 세우기 어려운 경우에는 인근에 표석을 두고 실제 위치를 약도로 표시하기도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항일 독립운동 관련 표석은 총 73개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 터'에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음료를 쏟은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조유정 기자.

이날 머니투데이가 서울 도심의 항일 독립운동 관련 표석을 직접 둘러본 결과 시민들이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설치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종각역 5번 출구 앞에 설치된 '만민공동회 집회 터' 역시 지하철 출입구와 비슷한 색인데다가 가까이 붙어있어 멀리서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관리가 아쉬운 표석도 눈에 띄었다. 서울역 인근 공사장 앞에 놓인 '3·1 독립운동기념 터' 표석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낙서돼 있었다. 종로3가역 2-1번 출구 앞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 터' 표석에는 누군가 음료를 쏟은 듯한 자국이 있었다. 얼룩은 오래 방치된 듯 표석에 말라붙어 있었다.

외국어 설명이 없어 외국인 관광객이 표석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2000년 설치된 '3·1 독립운동기념 터' 표석은 이름부터 설명까지 모두 한글로만 적혀 있었다.

2016년 설치된 '김상옥 의거 터', 2020년 설치된 '박자혜 산파 터', 2023년 설치된 '만민공동회 집회 터' 표석에는 이름만 영어로 병기돼 있을 뿐, 그 아래에 적힌 역사적 배경과 설명은 한글뿐이었다.

반면 서대문구 독립문 건너편에 설치된 '독립관 터' 표석은 이름과 설명 모두 영어로 병기돼 있었다. 독립관 터 표석은 2016년 설치됐다.

서울을 여행 중인 미국인 제임스(35)는 "표석이 너무 작아서 관광하는 동안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며 "설명이 영어로도 쓰여 있으면 좀 더 관심을 갖고 읽어볼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침에 따르면 필요한 경우 영어를 병기할 수 있다"며 "최근 설치하는 표석에는 이름을 영어로 병기하고 있지만 설명 내용은 심의를 거쳐 병기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표석이 단순히 설치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과 관광객이 쉽게 발견하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리와 안내 방식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눈에 잘 띄는 위치와 형태를 고민하고 훼손·오염된 표석을 꾸준히 관리하는 한편,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설명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박윤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표석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역사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외국어 안내를 보강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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