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law firm)이 완전 특수에요."
중앙부처 차관 출신 한 로펌 관계자의 말이다. 국정감사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는 정치권과 정부가 기업을 세게 규제할수록 수임이 늘어난다고 했다. 조사에 대응하고, 과징금에 불복하고, 새 규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감이 다가올수록 로펌 입법조사부서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대기업들이 수임료를 싸들고 와 국감 예상질문과 답변을 요구하고 총수나 CEO(최고경영자)가 증인으로 채택되면 빼내 줄 것을 종용한다.
기업이 돈과 사람을 생산보다 행정 방어에 쓰면서 생긴 특수다. 이 관계자는 이걸 '방어의 경제'라고 불렀다. 방어의 경제와 짝을 이루는 게 '징벌의 정치'다. 정치권에 만연한 엄벌주의의 다른 말이다.
담합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산업재해를 방치했다면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벌의 크기가 곧 정책의 성과를 결정짓는 지점에서 방어의 경제가 움트기 시작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1~7월 부과한 행정상 과징금은 1조3528억원(93건)이다. 작년 연간 3402억원의 약 네 배다. 기업은 이보다 과징금이 조금만 적어도 이익이다. 로펌 입장에서 보면 1조3527억원 정도의 시장이 열린 셈이다.
징벌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례 행사가 국감이다. 총수와 CEO들이 줄줄이 증인 명단에 오르고 하루 종일 대기하다 몇 분 호통을 듣고 돌아간다. 증인으로 채택됐다가 국감 직전에 철회되기도 한다. 올해도 국감 대비 차 국회에 온 한 대기업 임원은 기자에게 "그렇게 필요한 증인이라더니, 순식간에 안 불러도 되는 사람이 되더라"고 했다.
전국민이 다 아는 기업인을 불러세워 "국민께 사과하라"고 몰아세우는 모습은 강렬하다. 예전엔 여기서 스타 정치인도 탄생했다. 지금도 그렇게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시대착오다.
국감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일했는지를 따지는 자리다. 잘못이 있는 기업엔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국감장에선 기관의 감독부실이 핵심이어야 한다. 국감이 끝난 뒤 로펌 매출만 늘고 기업 방어조직만 커졌다면, 그게 국민을 위한 국감일까.
올해 국감이 방어의 경제가 작아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AI(인공지능)와 반도체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할 돈과 인력을 방어에 절박하게 쏟아붓는 관행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몇 명의 기업인을 불렀느냐가 아니라 몇 개의 제도를 고쳤는지로 평가받는 국감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