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20일, 범죄집단 '지존파' 일당이 검거됐다. 지존파는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살인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조직이다. 이들은 특히 "세상은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등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겼다.
당초 지존파의 조직명은 '마스칸'이었다. 이들은 마스칸을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마스칸'은 집이나 숙소를 뜻하는 아랍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낮은 학력 등으로 인해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 이마에 '지존(至尊)'이라고 적힌 두건을 두르고 훈련했다는 점과 두목 김기환의 별명이 '지존'이었다는 점을 토대로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존파의 결성 계기는 이른바 '고위층 대입 부정 사건'에 대한 분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농촌에서 성장해 집안 형편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이에 또래 젊은이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유흥가를 다니거나 대학 진학을 위해 상당한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증오심을 키웠다. 결국 이들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자는 데 뜻을 모았고, 이 과정에서 '지존파'가 결성됐다.
범행을 위해 지존파 일당은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이들은 지리산에서 물과 풀뿌리만 먹으며 일주일 동안 버티는 이른바 '지옥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원경이 달린 사냥용 공기총과 전자봉, 전기충격기 등을 마련했고 다이너마이트까지 확보했다. 사냥용 공기총에는 실탄을 넣어 사격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세운 행동강령에는 △돈이 많은 사람을 증오한다 △10억원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신자는 죽인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시 이른바 '오렌지족', '야타족' 등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 서울의 한 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희생자는 이들이 당초 표적으로 삼았던 부유층이 아니었다.
이후 지존파는 시골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범행에 나섰다. 이들은 고급 승용차를 탔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표적 삼았지만, 실제 희생자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하고 인육을 먹는 등 엽기적인 행각도 벌였다.
지존파의 범행은 이들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한 여성 이모씨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다. 이씨는 지존파 일당에게 납치된 뒤 "살려만 주면 뭐든 하겠다"고 애원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함께 붙잡힌 남성이 살해되는 과정에 강제로 가담해야 하는 등 끔찍한 일을 겪었다.
이씨에게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뜻밖의 사고 때문이었다. 지존파 조직원이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던 중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조직원 한 명이 다쳤다. 이씨는 자신이 간호하겠다며 해당 조직원과 함께 읍내 병원으로 이동했다.
조직원이 진료실에 들어간 사이 이씨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주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한 이씨는 경찰에 지존파의 범행 사실을 신고했다. 결국 1994년 9월 20일 지존파 일당이 모두 검거되면서 연쇄 살인과 납치 등 이들의 범행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지존파 일당에게 후회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압구정동 야타족을 죽이지 못한 게 억울하다"고 말했으며, 현장검증을 마친 뒤에도 "죽여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을 죽여 안타깝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결과 지존파 일당 6명은 살인·강도·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사형은 1995년 11월 2일 집행됐다. 두목 김기환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존파에게 납치됐던 이씨는 범행에 가담한 과정이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점 등이 고려돼 기소되지 않았다. 이후 국가의 지원으로 지방에 집과 직업을 제공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건 이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았으며, 가정을 꾸렸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암을 투병하는 등 힘겨운 삶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