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지쳤지? 추월한다" 韓쇼트트랙 막판 괴력의 비결은 과학?

김성휘 기자
2022.02.16 06:10

[궁금한 올림픽]

(베이징=뉴스1) 안은나 기자 = 쇼트트랙 대표팀 곽윤기가 15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계주 훈련을 하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16일 여자 1500m, 남자 5000m 계주를 끝으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한다. 2022.2.15/뉴스1

지난 11일 밤 중국 베이징.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 나선 최민정은 초반 뒷 순위에 처져 달렸다. 그러다 막판 스퍼트로 대역전을 노렸고 2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 은메달을 땄다.

전형적인 '한국형 전략'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국 선수들은 체격과 체력에서 유럽이나 북미권 선수들과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쇼트트랙 종목을 석권해 왔다. 혹독한 훈련은 물론이고 우리 실정에 맞는 작전, 각종 과학적 노력 덕분이다.

절대강자 한국, 평창까지 금메달만 24개

쇼트트랙은 111.12m짜리 트랙에서 운명을 겨룬다. 스피드스케이팅(롱 트랙)의 1/4 정도다. 짧고 곡선 주로가 많아 승부는 더욱 다이내믹하다. 선수끼리 부딪치거나 중심을 잃고 트랙 바깥으로 튕겨나가는 일이 잦다.

15일 미국 NBC 등에 따르면 이 때문에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서 가장 스릴있는(thrilling) 종목으로 꼽히곤 한다. 한국은 쇼트트랙을 스릴 있는 경기로 바꾼 주인공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한국은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 24개로 독주했다. 전체 메달 개수도 48개나 된다. 평창 한 대회만 해도 우리나라는 금메달 3개와 금은동 합계 6개 메달을 쓸어 담았다.

2018년 기준 '2인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금메달 10개로 2위를 달렸다. 총 메달개수로는 중국과 캐나다가 각각 33개로 공동 2위를 달렸다.

(베이징=뉴스1) 안은나 기자 = 최민정이 11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 경기에서 네덜란드의 수잔 슐팅(왼쪽),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와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2022.2.11/뉴스1

다들 지쳤지? 나 먼저 갈게

한국은 쇼트트랙 진출 초창기부터 '스타트'가 열세였다. 스타트가 좋다는 건 출발 순간 폭발적인 힘을 내고 자리싸움을 통해 트랙 안쪽 좋은 위치를 잡는 것이다. 아무래도 유럽 선수들이 유리했다.

11일 수자너 슐팅(네덜란드)은 여자 1000m 결승에서 초반부터 1위로 치고나갔다. 9바퀴 중 7바퀴를 모두 리드하는 '괴력'을 보인 끝에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우회 전략을 택했다. 초반부터 정면승부를 하기보다 우선 중위권에서 달리며 체력을 비축한 다음, 모든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막판에 치고 나가는 작전을 가다듬었다.

과감한 인코스 돌파는 물론, 경우에 따라 아웃코스로 달려나가 경쟁선수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인코스로 돌아야 거리를 단축하므로 누구나 인코스 추월을 바란다. 그런데 역발상으로 더 거리가 먼, 그래서 아무도 없는 아웃코스를 과감히 뛰었다. 그런데도 다른 선수들을 추월하곤 했다.

(베이징=뉴스1) 박지혜 기자 =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계주 3000m에서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대표팀이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메달 플라자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단상에 오르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정, 김아랑, 이유빈, 서휘민. 2022.2.14/뉴스1

남들 안하던 시도까지, 과학도 한몫

이 같은 한국형 전략엔 과학적 이유가 더 있다. 처음부터 맨 앞에 서면 뒤따라 오는 선수들을 대신해 공기저항을 받아주는 격이 된다. 당연히 체력소모도 커진다. 초반에 여러 선수들 틈에 있으면 이런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줄인다.

단거리에선 이 전략이 꼭 들어맞진 않는다. 코스가 짧기에, 뒤로 너무많이 처지면 추월할 시간이 부족하다. 지난 13일 남자 500m 준결승에 나선 황대헌 선수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긴 상태에서 4위로 달리다 막판 추월을 시도했다.

의도한 '작전'일 수 있지만 초반 자리선점이 아쉬웠고, 승부를 위해 추월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황 선수 본인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시도조차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소감을 남겼다.

한편 쇼트트랙용 장갑은 왼쪽 오른쪽이 다르게 생겼다. 왼손 장갑은 흔히 개구리장갑으로 불린다. 손가락 끝에 플라스틱의 일종인 에폭시 수지를 붙였다. 선수들은 회전 구간에서 왼손으로 얼음을 짚는데 장갑과 얼음 사이 마찰력을 최대한 줄여 속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불과 '1000분의 1초' 차이라도 앞설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본 것이다. 개구리장갑은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지금은 쇼트트랙에 보편적인 장비가 됐다. 선수복 또한 공기역학을 고려, 저항을 줄이는 한편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에 다치지 않도록 하는 과학의 산물이다.

(베이징=뉴스1) 박지혜 기자 =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경기에서 황대헌이 역주하고 있다. 2022.2.13/뉴스1

선수들 '진통' 겪고 재도약

한국 쇼트트랙은 2018년 평창 올림픽 이후 최악의 시기를 겪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부 파벌 다툼, 코치의 폭언·폭력에다 여성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건, 선수간 갈등까지 터져나왔다.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훈련에만 매진할 여건이 아니었다.

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탓에 이번 대회 성적 전망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해도, 실격을 당해도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선수들이 지나온 그 터널이 어땠을지 공감하기 때문이다. '금메달 일변도' '성적 지상주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쇼트트랙 대표선수들은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다시 얼음판에 선다. 16일 오후 김아랑, 이유빈, 최민정 선수는 여자 1500m 준준결승에 나선다. 곽윤기, 김동욱, 박장혁, 이준서, 황대헌 선수는 남자 5000m 계주에 출전한다.

'팀 코리아'는 멈추지 않는다.

(서울=뉴스1) 이지원 디자이너 = 최민정(성남시청), 이유빈(연세대), 김아랑(고양시청), 서휘민(고려대), 박지윤(한국체대)의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13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4분03초627을 기록,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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