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감독님, 아직 저보다도 유연하세요."
국가대표 사이드암 고영표(35·KT 위즈)가 반등을 도운 이강철(60) 감독의 놀라운 유연성에 새삼 놀랐다.
고영표는 2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릴 2026 신한 SOL KBO리그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 방문경기에서 6이닝(95구) 8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KT의 11-3 승리를 이끌었다. 고영표 개인에게도 무려 지난달 7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 이후 51일, 8경기 만의 승리였다. 이로써 고영표는 10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5.07, 55이닝 10볼넷 64탈삼진을 기록하게 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고영표는 몸의 유연성을 늘려 더 강한 공을 던지는 걸 목표로 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발탁돼 세계 레벨의 선수들을 상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4월 5경기 평균자책점 5.40, 피안타율 0.330,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72라는 처참한 세부 지표가 말해줬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고영표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몇 가지 시도를 했다. 코치님들은 항상 '하던 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난 도전을 하고 싶었다. 몸의 탄력이나 구속을 올리려 했다. 그래서 구속이 조금 빨라졌다. WBC 때도 평소 시속 110㎞ 후반이던 체인지업이 120㎞ 초반까지 나오고 낙폭이나 움직임 자체도 예전이랑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영표라는 투수는 체인지업이 기반으로 하는 투수다. 거기에 직구와 커브를 섞어가며 이닝을 끌고 가는 투수인데, 체인지업의 완성도가 낮아지면 정말 어려워진다. 오늘(28일)도 경기 초반 체인지업을 카메론, (정)수빈이 형, 이유찬 선수에게 계속 맞았는데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고영표는 구단, 유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후배가 한 번쯤은 고민을 상담하는 리그 최고의 멘토 중 하나로 불린다. 지난해 KT에 온 좌완 오원석도 우완 사이드암인 고영표에게서 슬라이드 스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조언받아 성장했다.
정작 어느덧 리그 최고참으로 향하는 고영표가 조언을 구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고영표는 "구속을 늘리려 했던 부분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나는 하체 위주로 던져야 하는 선수인데 상체에 부하가 많이 왔다. 그래서 하체 위주의 피칭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실패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간의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KT에는 같은 사이드암 선배이자 그를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본 사령탑 이강철 감독이 있었다. 이강철 감독은 1989년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 1차 지명으로 입단해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투수다. 허리 과부하로 사이드암은 롱런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무려 한국 나이 마흔 살까지 뛰었다. 부상 관리도 체계적이지 못했던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중반까지 뛰면서 602경기 152승 112패 33홀드 53세이브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다. KBO 완투승 65회(리그 6위), 완봉승 18회(리그 5위)는 이제 범접하지 못할 대기록이다.
이날도 중계화면에는 이강철 감독이 6회를 마치고 내려온 고영표에게 무언가 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고영표는 "감독님이 '오늘 (바꿔보니) 어떤 것 같냐?'고 물어보셨다. 그제(26일) 감독님이 내가 피칭하는 걸 옆에서 보시면서 하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셨다. 그걸 오늘 시도해봤는데 감독님은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느낄 때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자꾸 강하게 던지려다 보니 흐름이 끊겼다. 흐름이 끊기면 힘 있게 가던 공도 가다가 풀린다. 체인지업의 경우 가다가 떨어져야 하는데 풀리면서 밋밋하게 들어간다"라며 "감독님은 하체를 더 활용해서 공을 길게 쭉쭉 뿌리라고 하셨다. 아직 내 스타일로 흡수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철 감독에게는 고마움을 전했다. 고영표는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한 번씩 짚어주신다. 동료들에게 나는 조금 어려운 선배일 수 있다. 후배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해주긴 어렵고 (우)규민이 형도 먼저 다가와서 말하기에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도 요즘 어려운 것이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나이가 들면서 베테랑 선수들이 많이 경험하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고 미소 지었다.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서 이강철 감독에 대한 새삼 감탄한 사실을 하나 더 공유했다. 고영표의 말대로면 '답답하면 감독님이 뛰세요'라는 팬들의 농담이 괜한 말은 아닌 셈이다.
고영표는 "감독님은 아직도 나보다 더 유연하시다. 사이드암 투수가 아무래도 물 흐르듯 부드럽게 던지니까 유연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던져서 폼이 부드러운 거지 유연성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감독님은 사우나에서 몸을 움직이시는 것만 봐도 진짜 유연하다. 균형도 되게 좋고 타고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새로운 도전이 아니어도 단일시즌 13승에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KT 에이스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영표는 다시 국가대표 사이드암을 만들어줬던 투구폼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고영표는 시즌 후 다시 메커니즘 교정을 도전할 생각인지 묻는 말에 "아니다. 이미 데이터로 실패라고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고영표라는 투수가 던지는 폼을 견고하게 만들려 한다. 남들처럼 구속이 빨라지면 어떻고가 아니라 나는 나답게 공을 던지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