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믿기지가 않는다. 처참한 전반기를 보냈던 SSG 랜더스가 후반 들어 완전히 달라졌다.
SSG는 후반기 12경기에서 6승 5패 1무로 5할 이상 승률을 기록 중이다. 주목할 만한 건 6승이 모두 선발이 챙긴 승리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3위에 올랐던 SSG의 추락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단어는 바로 '선발진 붕괴'였다. 86경기를 치른 전반기 SSG 선발진은 14승(33패), 388⅔이닝, 평균자책점(ERA) 6.28,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10회로 모두 최하위에 머물렀다.
야구는 투수 놀음, 그 중에서도 선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히는데 선발이 무너지니 해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토록 강하던 불펜에도 무리가 가며 덩달아 흔들렸다. 그 결과는 9위였다.
전반기 막판부터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부상 장기화로 떠난 미치 화이트의 대체 선수 토마스 해치, 6월부터 합류한 김민준, 부진을 거듭하다가 방출된 앤서니 베니지아노의 대체 선수 페드로 아빌라(29) 셋이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켜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 경우 시즌 초반 선전했던 김건우와 불펜진도 덩달아 살아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해치와 김민준은 기복이 있었으나 아빌라는 굳건했다. 지난 16일 KIA 타이거즈와 데뷔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첫 승을 챙긴 아빌라는 지난 2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6이닝 3실점하며 2연승을 달렸다. 28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이숭용 감독은 29일 두산전을 앞두고 "어제는 3번째 경기인데 밸런스가 가장 안 좋았다. 그런데도 위기 상황을 막아내고 어찌 됐든 경기를 풀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걸 보고 '참 영리한 친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전에 (김)민준이한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밸런스가 늘 좋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안 좋다고 판단하면 그 안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끌어낼 수 있어야 된다. '어떻게 하면 맞춰 잡을까', '어떤 구종을 써야 될까' 이런 부분들을 계산해야 한다"며 "아빌라는 누가 봐도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걸 다 소화를 해주고 있다. 그게 경험인 것이고 좋은 투수라고 보는 역량을 갖췄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빌라가 중심을 잡으면서 선발진이 완전히 달라졌다. 후반기 들어 치른 12경기에서 SSG 선발진은 단 한 번도 5이닝 이전에 내려가지 않았다. 12경기에서 6승 3패, ERA 3.68, 무엇보다 이닝 소화가 63⅔이닝으로 1위. QS도 6회로 KT와 함께 가장 많아졌다.
김민준은 아빌라에게 조언을 듣고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장착했다. 당초 밋밋했던 슬라이더를 조금 더 직구처럼 던지라는 말과 함께 그립에도 변화를 줬고 이젠 본인이 원하던 커터성의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됐다. 29일 승리 투수가 된 김민준이 1,2회 위기 상황에서 땅볼 타구를 유도해낸 공은 모두 슬라이더였다.
경기 후 김민준은 "슬라이더 구사율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보여주기식으로 던졌는데 잘 먹히니까 이젠 카운터로 잡을 수도 있고 결정구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쉽게, 쉽게 썼다. 포수 (조)형우 형도 오늘 슬라이더가 잘 꺾인다고 해서 자신 있게 던졌다"며 "잘 안됐는데 아빌라 선수가 알려줘서 고맙다. 더 잘 던지겠다"고 웃었다.
앞서 이 감독은 "아빌라 선수가 오면서 중심을 잡아주니까 또 다른 선발 해치도 조금 느끼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마운드에서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먼저 SSG 유니폼을 입고 6경기에서 1승 4패, ERA 7.62로 부진했던 해치는 지난 24일 NC 다이노스전 6이닝 2실점(1자책) 호투를 펼쳐 승리를 챙겼다. KBO리그 첫 QS였다. 극심한 부진을 겪던 김건우도 25일 NC전에서 5이닝 무실점 투구로 승리를 챙겼는데 무려 14경기 만에 나온 무실점 투구였다.
그만큼 믿고 맡길 에이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아빌라의 합류가 SSG 선발진에 큰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