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팀을 응원하는 문화는 고시엔 야구 대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팬들과 미디어는 약체 팀 의 분투를 초고교급 선수들이 모여 있는 야구 명문교의 활약을 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난 5일 개막한 제108회 여름철 고시엔 대회에 참가한 49개교 가운데 40개교는 사립학교다. 일반적으로 사립학교는 야구부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 넉넉한 편이다. 여기에 대다수 사립학교는 다른 지역에서 뛰어난 선수를 선발할 수 있어 팀 전력이 좋다. 사립학교가 고시엔 대회를 쥐락펴락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공립학교는 그렇지 못하다. 학교의 지원도 제한적이고 주로 지역의 야구 유망주만 선발한다. 자연스레 공립학교가 고시엔 대회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졌다. 이번 대회에도 공립학교로 본선에 진출한 팀은 9개에 불과하다.
1970년대까지 일본 고교야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상업고를 위시한 실업계 고교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번 대회에는 5개 실업계 고교만이 본선에 올랐다. 기본적으로 이는 일본에서 실업계 고교의 숫자가 감소한 것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하지만 고시엔 본선에 오른 사립고교 중에는 전력이 약한 팀도 있다. 사상 최초로 고시엔 본선에 진출한 서부 도쿄지역 대표 하치오지지센(八王子??) 고교가 대표적이다.
하치오지지센고 야구부는 전용연습장도 없고 특기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하치오지지센으로 '야구 유학'을 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이 팀은 평일에 2시간 밖에 훈련을 하지 못한다. 다른 학생들의 체육수업을 위해 운동장을 나눠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마저도 야구부가 사용하는 운동장은 외야 수비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이 때문에 야구부는 주말에 주변 리틀 야구 구장을 대관해 연습을 해왔다.
하치오지지센고의 야구부 선수들은 진정한 의미의 특기생도 아니다. 이들은 학비가 면제되거나 감면되는 특기생이 아니다. 단지 중학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 스포츠 추천 입학 제도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 선수일 뿐이다.
열악한 인프라에 학비 면제나 제반 비용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기생 제도가 없는 하치오지지센고는 다른 지역에서 뛰어난 선수를 데려 오기가 매우 어렵다.
하치오지지센고의 가와모토 로버트(40) 야구부 감독은 "좋은 선수를 입학 시키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기숙사도 없어 가까운 곳에서만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고 야구부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하치오지지센의 20명 선수 가운데 19명은 모두 학교 소재지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선수들이다.
9일 고시엔 대회 1차전에서 하치오지지센고는 도쿠시마 현(縣)대표로 출전한 나루토우즈시오 고교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로 아쉽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하치오지지센고 감독은 "야구부가 새 역사를 썼다"고 했다. 비록 본선 1차전에서 패했지만 하치오지지센고가 서부 도쿄 지역예선에서 6경기를 이기고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대회 전부터 하치오지지센고에 대한 일본 야구팬들의 관심은 높았다. 학교 측이 단체 응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2200만 엔(약 1억 9700만 원)이 모금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치오지지센고의 성공적인 크라우드 펀딩에는 야구부 주장 야자와 료마(3학년)의 고시엔 대회 개회식 선서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그는 선서문에서 "내일을 향해 전진할 때마다 자연은 여러 번 큰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동료와 함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은 이를 극복하는 데 큰 원동력이다"라며 지난 7월 28일 발생한 구마모토의 지진 피해와 이를 복구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언급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선서 끝 부분에 "경기에 졌지만 눈물을 참는 얼굴 표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자"고 했다.
실제로 하치오지지센고 선수들은 9일 경기에서 패했지만 눈물을 훔치는 대신, 동료들을 서로 격려해 줬다. 또한 일본 언론들도 기사를 통해 어려운 환경이지만 고시엔 본선에서 득점에 성공한 하치오지지센고의 분투를 높이 평가했다.
일본 누리꾼들도 2분 40초에 불과한 개회식 선서문 낭독을 위해 밤을 세워 문장을 수정하고 200번이나 연습을 했던 야자와 주장의 노력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야구 경기의 승패를 떠나 고교야구의 사회적, 교육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고시엔이 부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