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2003년생 '황금세대' 사이에서 이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8라운드 지명자가 신인왕 경쟁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2026년 KBO 리그 대반전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유명 엘린이(LG 트윈스+어린이) 출신 문정빈(23)이다.
문정빈은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KT 위즈와 홈 경기에 4번 타자 및 1루수로 선발 출장해 5타수 2안타(1홈런) 5타점 2득점으로 LG의 9-1 승리를 이끌었다.
가장 강렬한 장면은 5회였다. LG가 2-1로 앞선 1사 만루에서 KT 선발 소형준의 시속 147.3㎞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시즌 14호이자 문정빈의 야구 인생 첫 만루홈런이었다. 7회에는 좌중간을 가르는 1타점 적시 2루타까지 더해 개인 한 경기 최다인 5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문정빈의 상승세는 더 이상 반짝 활약으로 보기 어렵다. 55경기 타율 0.305(164타수 50안타) 14홈런 44타점 27득점, 출루율 0.385 장타율 0.646 OPS(출루율+장타율) 1.031을 기록 중이다.
표본이 아직 많지 않지만, 타율 3할과 두 자릿수 홈런, OPS 1.000 이상을 동시에 기록하면서 LG 타선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하고 있다.
문정빈이 처음부터 화려한 기대를 받았던 선수는 아니다. 가동초-잠신중-서울고를 졸업한 그는 2022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8라운드 77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았다.
그가 지명된 2022년 KBO 신인드래프트는 짧은 시간 안에 KBO 리그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황금 드래프트로 불린다. 유독 LG에서는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지 못했고, 문정빈 역시 같은 2003년생 동기들이 일찌감치 프로 무대 중심으로 올라서는 동안 퓨처스리그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 첫 풀타임 시즌을 맞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2003년생 선수들의 활약이 리그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정빈의 성장도 더욱 눈길을 끈다. 그가 홈런을 친 이날도 같은 구장에서 '지난해 신인왕' 안현민(23·KT 위즈)이 시속 180.2㎞ 타구 속도로 144.6m의 초대형 홈런을 쳤다. 저 멀리 대전에서는 김도영(23·KIA 타이거즈)이 36번째 홈런으로 2위 오스틴 딘(33·LG)과 격차를 4개로 벌린 홈런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문정빈은 "고등학교 때부터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드래프트 전부터 우리 세대가 '황금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라며 "친구들이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나도 거기에 한 번 끼고 싶은 욕심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문정빈은 그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넓기로 유명한 잠실구장에서만 올해 홈런 8개를 기록했다는 점도 그의 장타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LG의 새로운 4번 타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문정빈은 "우리 팀 4번 타자는 (문)보경이 형"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른 구장에 갔다가 잠실에 오면 멀다고 느낀다. 타석에서는 그런 부분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그래서 홈런이 더 나온다"고 답했다.
신인왕 이야기가 나오자 반응은 더 조심스러웠다. KBO 신인상은 해당 연도를 제외한 최근 5년 이내에 투수는 30이닝, 타자는 60타석을 넘지 않은 선수가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정빈은 올해 전까지 1군 통산 21경기 33타석에 그쳐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 그동안은 올해 한화 이글스 주전 포수로 자리 잡은 허인서(23)와 SSG 랜더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김민준(20)이 주목받고 있었다.
문정빈은 "다들 너무 잘하고 있어서 신인왕 욕심은 많이 나지 않는다. (허)인서의 경우 수비도 많이 했고 시즌 초부터 잘해서 나는 욕심 없다"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기록은 문정빈을 점점 외면하기 어렵게 한다. 시즌 중반 이후 기회를 본격적으로 받았음에도 홈런에 필요한 타석 수는 13.36회로 김도영의 12.94회 다음이다. 같은 팀이자 홈런 리그 2위 오스틴의 15.03회보다 적은 기회에서도 홈런을 치고 있다.
"친구들이 너무 잘해서 나도 거기에 끼고 싶다"던 2003년생 늦깎이 거포는 어느새 신인왕 경쟁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