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

김성은 기자
2015.12.16 18:15

“소신을 가지고 기업의 신용을 평가한 영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신용평가사가 올해 기업들의 신용평가를 엄격히 실시했다. 그 결과를 묻자 돌아온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기업의 신용등급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선제적으로 하향 조정을 하니 등급 평정을 맡기지 않는 기업들이 생겨 매출이 줄었다는 뜻이다. 신용평사가의 주요 수익원은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주는 수수료다. 그러니 신평사는 기업의 돈을 받아 기업의 신용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신평사의 엄격한 잣대에 기업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관투자가들도 불만이다. 보유하고 있던 채권이 신용등급 하락으로 평가손을 입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목표주가를 조정하는 것도 아니고 신용등급 변화가 너무 심하다”며 “최근 회사채 시장이 경색된 원인 중 일부는 신평사에 있다”고까지 말했다.

반면 신평사의 변화를 의미있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2008~2010년엔 신용등급 부풀리기가 심했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최근의 등급 조정 과정은 공격적인 하향이라기보다 등급 정상화 과정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최근 회사채 시장이 침체된 것은 글로벌 경기 부진 속에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악화된 것이 원인이지 신평사의 등급 하향 탓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최근 두산그룹과 이랜드그룹 등이 자산매각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신평사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위험을 경고한 영향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이왕 겪을 일이라면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빨리 맞고 넘어가는게 낫다는 뜻이다. 신용등급 강등 등으로 신평사의 경고를 받은 기업들이 한시라도 체질 개선에 나서 STX나 동양그룹과 같은 사태를 피해 갈 수 있다면 신평사의 쓴소리가 결국 몸에 좋은 ‘약’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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