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걸음마 뗀 토종 행동주의펀드

송정훈 기자
2018.12.03 18:46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지난 4월 불거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 직후 운용사의 펀드레이징(자금조달)이 갑자기 잘 됐다는 건 역설적으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올해 행동주의 펀드를 결성한 운용사 대표의 한 말이다. 올 들어 양호한 운용성과를 거두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대기업 오너일가의 갑질이 이슈화돼야만 자금조달이 용이질 만큼 펀드시장이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인수한 KCGI다. 행동주의 사모펀드를 표방하는 KCGI는 지난달 15일 자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의 지분 9.0%를 매입, 2대주주에 올랐다고 공시했다. 토종 행동주의펀드가 대기업 지분을 대거 확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행동주의펀드는 오랜기간 기업경영에 적극 개입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투자 수익 극대화 전략을 구사한다. 때문에 2대주주인 KCGI가 향후 경영개입 등 주주활동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열려있다. 한 사모펀드 매니저는 "한진칼은 그룹 지주회사로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오너 지분율(28.95%)은 30% 미만으로 낮아 다른 대기업에 비해 취약해 KCGI가 경영개입에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펀드는 초기 운영성과도 양호하다. 한진칼의 지분인수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단기적으론 행동주의펀드의 소기의목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성공한 셈이다. KCGI의 이날(3일) 주가(종가기준)는 3만1500원으로 지분 취득 사실 공시 직전인 15일(2만4750원)에 비해 불과 보름여 만에 6750원(27%)이나 올랐다. 지분 취득 공시 다음날인 지난달 16일 2만84000원으로 3650원(14.75%) 급등 한 뒤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KCGI가 지난 4월 이후 조 전 전무 등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논란이 극에 달하면서 조기에 대규모 한진칼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올해 기관투자자와 고액자산가 등 개인투자자들의 대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져 행동주의 펀드로 자금유입이 늘면서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토종 행동주의펀드가 장기적인 투자 수익 극대화 취지를 살려 트랙레코드(운용성과)를 쌓아 투자자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수익에 급급해 기업가치를 떨어트리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토종행동주의펀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그 만큼 운용사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리기에 성공할 수도, 계속 게걸음이나 뒷걸음을 칠 수도 있다. 운용사의 노력 속에서 토종 행동주의펀드가 자본시장 활성화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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