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효과가 실종된 채권 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를 선별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증시 활황에 올라탄 증권채에 웃돈을 얹어주며 사자 주문을 내는 반면 건설 한파를 맞은 건자재 기업엔 위험 수당(가산금리)을 청구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가 국채시장 수급 부담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회사채 시장에 불안이 전이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천피(코스피5000)로 대표되는 주식시장과 대조적으로 안전자산인 채권 수급은 약화되고 있다.
8일 증권가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신용등급 AA0)는 지난달 28일 수요예측에서 △2년물 700억원 △3년물 1500억원 △5년물 300억원을 예측했으나 수요가 쏠리며 언더금리(민평 금리보다 낮은 금리) 발행이 성사됐다. 개별 민평 대비 낙찰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2년 -2bp 3년 -1bp 5년 -5bp였다. 발행 규모는 △2년 1000억원 △3년 3300억원 △5년 700억원으로 증액했다.
NH투자증권(AA+)도 지난달 30일 수요예측에서 △3년 2000억원 △5년 1000억원에서 △3년 3000억원 △5년 1300억원으로 발행 물량을 늘렸다.금리는 0bp에서 결정됐다. 증권사물은 모집금액을 웃도는 주문이 붙는 동시에 투자자들이 금리를 양보하면서 언더와 파(par·민평과 동일 금리) 구간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물류기업은 만기 선택이 갈렸다. CJ대한통운(AA-)는 지난달 27일 2년물 400억원을 800억원으로 늘리며 –1bp에 수요예측을 마감했다. 그러나 3년물은 15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늘린 뒤 +3bp를 줬다.
5년물도 600억원에서 700억원으로 증액했는데 해당 구간에서 +5bp 오버(민평 금리보다 높은 금리) 발행이 이뤄졌다. 투자자들이 단기 구간은 현금흐름 에 대한 신뢰로 소화됐지만 장기 구간은 프리미엄을 요구한 것이다.
CJ(AA-) 3년물은 지난 2일 10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늘리며 –1bp 발행이 성사됐다.
건자재는 전방 변수에 민감했다. 케이씨씨(KCC) AA-는 지난달 26일 수요예측에서 △2년물 500억원 △3년물 1500억원 어치를 각각 1000억원 3000억원으로 키웠다. 금리는 0bp에서 마쳤다.
반면 KCC글라스 AA- 3년물 1000억원은 지난 3일 +25bp 규모의 오버금리가 붙었다. 수요 경쟁률은 1.30배였다. 동일 등급에서도 전방 업황과 심리 차이가 금리 격차로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화학 업종인 SKC(A0)는 지난달 26일 2년 400억원과 3년 600억원이 0bp에서 낙찰됐다.
기업들의 발행 목적은 신규 투자보다는 차환자금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올해 회사채 약세 현상은 국채 발행 우려 영향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잠재성장률 제고를 내걸고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면서 기관 투자자들은 국채 공급 부담을 의식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금리가 금리 인하 종료를 감안하더라도 높은 레벨에 있고 크레딧(회사채) 금리 레벨도 높아졌으나, 금리 강세요인 부재와 변동성 확대로 회사채 발행 강세도 제한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의 올해 국고채(개인투자용 국채 제외) 발행 규모는 225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000억원 감소한 수준이다. 시장이 의식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들어서 여섯 차례 공식석상 등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언급한 점이다. 다만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등은 "추경 논의가 없다"고 했다.
정형주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채금리가 연일 상승하면서 유통시장 센티멘트(심리)도 빠르게 악화했다"라며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기조가 초우량물 공급부담으로 이어진 영향이 크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