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세계 우주산업의 화두는 단연 스페이스X다. 스페이스X는 현재 장외시장에서 약 1조31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으며, 다가오는 6월 기업공개(IPO)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5000억달러의 시가총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연간 170회의 로켓 발사 신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상업용 우주 발사체 시장 점유율의 약 80%를 잠식하는 압도적인 독점 체제를 굳혔다.
지금 월스트리트의 관심은 차세대 스페이스X로 몰린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는 기업은 로켓랩. 대학도 나오지 않은 고졸 엔지니어인 피터 벡이 설립한 곳이다. 벌써 기업가치가 50조원으로 올랐고 글로벌 위성발사 시장에서는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벡이 로켓랩을 설립한 2006년, 수중에는 수천만원 정도 밖에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기업이나 공공연구소 등에서 연구용역을 따내고, 남는 비용으로 부품을 사서 로켓을 조립하는 생활을 했다. 이듬해 벡은 그 못지 않은 괴짜 투자자에게 30만 뉴질랜드 달러(당시 환율로 2억원 중반)를 투자받았다. 그의 본명은 마크 스티븐스였는데, 우주에 미쳐 이름까지 마크 로켓(Mark Rocket)으로 바꾼 인물이었다.
이 돈으로 로켓랩은 2009년 '아테아 1호'를 쏘아 올렸다. 뉴질랜드 앞바다의 척박한 섬에서 쏘아 올린 6m, 60kg짜리의 로켓은 남반구 민간기업 최초로 우주 경계선(카르만 선)을 돌파하는 완벽한 성공을 거뒀고, 벡은 단숨에 글로벌 항공우주 업계가 주목하는 이단아로 떠올랐다.
2억~3억원에 불과한 돈으로 우주로켓을 쏘아올리는데 성공한 로켓랩을 주목한 뉴질랜드 정부 산하 혁신청(Callaghan Innovation)은 잠재력을 알아보고 로켓랩에 총 1500만 뉴질랜드 달러(약 100억원) 이상의 R&D 보조금을 과감하게 지원했다. 2015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물 벤처캐피털인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와 록히드마틴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투자유치 성공으로 자금을 확보한 벡은 가전제품 금형스타일의 대량생산 체제를 로켓에 적용했다. 목표는 500kg 이하의 소형위성을 가장 빠르고 싸게 궤도에 올려놓는 우주 전용 퀵서비스, 일렉트론(Electron)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벡은 러더퍼드(Rutherford)엔진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일론 머스크 전기차급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우주기업들은 가스밸브와 터빈 등 복잡한 엔진 부품을 석·박사급 엔지니어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용접해 조립했다. 성능은 좋았지만, 하나를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예술품에 가까웠다. 반면 벡은 과감하게 금속 3D프린터를 도입해 러더퍼드 엔진의 핵심 부품들을 통째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D 프린터 버튼을 누르면 단 24시간 만에 로켓 엔진 하나가 완성됐다. 복잡한 가스 터빈은 리튬 폴리머 배터리로 돌아가는 가벼운 전기 모터 펌프로 대체해 버렸다. 국책연구소 시절의 경험을 살려 쇳덩어리 대신 가벼운 탄소섬유 복합재로 동체를 구워낸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말 그대로 냉장고 조립 라인에서 부품을 찍어내듯 로켓을 양산하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압도적인 원가 절감과 생산 속도를 바탕으로 일렉트론은 회당 발사 비용을 불과 750만 달러(약 100억원)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전에는 소형 위성 하나를 단독으로 우주에 보내려면 페가수스 로켓을 써야했는데 최소 4000만달러(약 530억원)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럴 돈이 없는 업체들은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의 대형로켓에서 다른 위성들의 합승을 기다려야 했다. 일정이 꼬이면 1년이고 2년이고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창고에서 기다려야 했고 목적지도 맘대로 정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단돈 100억원에 소형위성만 단독으로 보내는 로켓랩의 일렉트론 발사 서비스는 엄청난 경쟁력이었다. 소형 위성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가 로켓랩에서 분출된 이유다. 일렉트론 로켓은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며 궤도에 올랐고 경쟁력을 입증한 로켓랩은 이후에도 이를 중심으로 한 1회용 소형로켓 시장에 총력을 다했다.
투자자들과 우주항공 기업들은 로켓랩에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벡의 생각은 달랐다. 로켓을 재사용 하려면 중, 대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핵심 경쟁력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벡은 "절대 소형로켓 이상은 만들지 않을 것이며, 이 말을 바꾼다면 모자를 씹어 먹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1회용 로켓만 쓰던 스페이스X는 2015년부터 쏘아올린 로켓을 지상·해상착륙 등으로 회수했고 2017년에는 재사용 로켓을 발사하기도 했다. 이는 로켓랩에 큰 위협이 된다. 수천억원짜리 1회용 로켓을 바다에 버리는 대신, 주유만 하고 다시 띄울 수 있다면 발사단가가 드라마틱하게 낮아져 우주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게 된다.
거대한 화물을 싣고도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스페이스X의 공세에 로켓랩도 결국 뉴트론(Neutron)이라는 이름의 중형 재사용 로켓개발 카드를 꺼내들게 된다. 벡은 2021년 뉴트론 개발을 공식발표하는 자리에서 모자를 믹서기에 갈아먹어 약속을 지켰다.
뉴트론은 스페이스X의 팰컨9과 정확히 타깃이 겹치는 체급(지구 저궤도 탑재량 최대 15톤)이다. 벡은 여기서도 자신만의 장기를 발휘했다. 로켓 전체를 가벼운 탄소 섬유 복합재로 구워내고 1단 추진체를 해상이나 발사현장으로 귀환시켜 재발사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소형 로켓에서 증명한 대량양산의 마법을 덩치 큰 재사용 로켓에 그대로 이식해 발사단가를 더 낮추겠다는 심산이다.
이것이 바로 2026년 현재 월스트리트의 스마트 머니가 로켓랩에 미친 듯이 베팅하는 진짜 이유다. 다가오는 6월 스페이스X가 1조5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몸값으로 상장하면 시장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뉴질랜드 최남단에서 거친 남극풍을 맞으며 냉장고 부품을 깎던 17세의 고졸 청년. 그는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일론 머스크의 우주제국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창이다. 우주 패권을 향한 두 괴짜의 전쟁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