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민연금이 선물환 매도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510원대까지 내려왔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과 국민연금의 환헤지(위험 회피)성 거래가 더해지자 지난 주말에 1560원대까지 치솟던 환율이 약 50원 하락(원화가치 상승) 했다.
다만 외국인들이 국내주식을 22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이날 하루에만 2조원 넘게 매도했다. 환헤지는 환율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만약 환율이 더 오르면 국민연금은 해외자산에 대한 원화 환산 이익 증가분을 포기한 셈이 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2.9원 내린 1512.1원에 마감했다. 앞서 지난 6일 오전 2시 마감한 야간 거래에서는 환율이 장중 1561.5원까지 올랐다.
그 직후 거래일인 전날 장중에는 1550원대 부근에서 외환당국이 고환율을 억제하기 위한 구두개입을 했고 국민연금은 선물환 매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선물환 매도는 해외투자자산에서 발생하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환헤지(환 위험회피) 수단이다. 국민연금이 장래에 받을 달러를 미리 팔기로 하면 거래 상대방은 국민연금으로부터 달러를 사들이는 선물환 계약을 갖게 된다. 거래상대방은 달러를 비싸게 사들이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현물 달러를 미리 시장에 매도할 수 있다.
다만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2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22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였다. 외국인이 원화자산인 국내 주식을 매도하면 달러 환전수요가 발생해 환율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선물환을 매도한 것은 연초 이후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선물환 매도는 국민연금의 환헤지 한도가 상당폭 미소진된 상태인 것이 알려진 이후 실시됐다.국민연금이 환율이 치솟는 국면에서 유리한 환율에 달러를 매도한 셈이다.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정부의 환율 방어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양한 외환 정책 투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5일 밤(6일 야간거래) 고점인 1561.5원을 넘어 1600원 내외까지 접근할 경우 (한국은행이) 과도한 쏠림 방지 및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 방지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기금 수익성 제고와 외환시장 안정을 동시에 조화시키겠다며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재정경제부 등이 참여하는 뉴프레임워크 기획단을 출범하고 4월엔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기존 10%에서 15%로 높였다.
기존 운용 구조상으론 기금운용본부 재량으로 ±5%포인트까지 조정 가능한 전술적 환헤지를 더하면 외화 자산의 최대 20%까지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기금위는 당시 회의를 거쳐 "외환시장 악화 시 비율을 추가 확대할 수 있도록 탄력적 운용 방침도 함께 결정했다"라면서 환헤지 상단의 범위를 밝히지 않았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원화 가치 안정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에도 원화 약세가 진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당국은 구두개입에 이어 강력한 실개입을 통해 기대관리(expectation management)에 나섰다"라며 "그 이후 미국-이란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원/달러 환율은 고점을 낮춰가며 1440원대까지 밀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6월 8일 개장 직후 국민연금이 선물환 매도에 나선 것은 당시와 유사한 행보로 풀이된다"라고 했다.
다만 선물환 매도는 구조적 달러 수요를 없애는 조치는 아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팔아 해외자산을 늘리는 리밸런싱을 원칙대로 실시하면 달러 가치는 수십조원 단위 환전 수요로 인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달 기금위원회 개최 전까지 유지해왔던 국내주식 비중 19.9%로 되돌리는 리밸런싱에 나서는 상황을 가정하면 9일 종가 기준 약 136조3000억원어치 국내주식을 매도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3월 말 국내주식 평가액(320조9000억원)에 코스피 변동률을 대입(3월 말 5052.46→9일 8096.93·60.3%)하면 9일 종가 기준 평가액은 약 514조4000억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최근 알려진 기금 규모 1900조원을 적용하면 국내주식 비중은 약 27.1%로, 이를 19.9%로 낮추려면 약 136조3000억원어치 국내주식을 매도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에서 포지션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 측에 "국내 증시가 잘되는데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더 보유하면 그만큼 득이 되고 국민의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고 발언했고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내년 기금운용위를 개최해 투자지침 기준들을 변경하려고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국내주식 허용범위 상단을 비공개 처리해 국민연금이 최대치로 용인 가능한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알 수 없게 됐다.
국민연금이 한국은행과 맺은 외환 스와프로 인해 외환 보유고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보다 8억8000만달러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감소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등 시장안정화 조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의 높은 변동성과 그동안의 평가이익 등을 고려해 자산 비중 조정과 환헤지를 병행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민연금은 환헤지 재개 여부를 비롯한 운용 현황에 대해 "구체적인 운용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