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담보대출이 제도적으로 활성화되면 연간 약 6만명의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이나 임차 보증금 조달을 위해 연금을 깨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전·월세 보증금 마련 목적의 중도인출이 전체의 82%에 달하는 가운데 은행·보험사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요양비 마련, 회생·파산으로 급전이 필요한 가입자들에게 '연금 깨기'의 부담이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금융당국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퇴직급여법 개정을 통해 퇴직연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려는 건 급전이 필요한 연금 가입자들의 중도인출을 막고, 만기 연금수령을 통한 안정적 노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과 보증금 조달, 부양가족에 대한 요양비 수요가 전체적으로 느는 추세"라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와 이러한 사회적 수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금 담보대출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급여법 개정으로 퇴직연금에 대한 담보 설정이 가능해지면 가장 먼저 무주택자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2024년 기준 6만7000명 중도인출자 82%가 무주택자로, 주택 구입이나 전월세 보증금 조달을 위해 연금 중도인출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자가 중도인출한 이유는 주택구입(56.5%) 목적이 가장 많았다. 전·월세 보증금 납부 등 주거임차가 25.5%, 개인회생절차 개시가 13.1%로 뒤를 이었다. 본인이나 배우자, 부양가족의 요양비 마련을 위한 인출은 4.4%로 집계됐다.
특히 20대의 경우 무주택자의 전·월세 보증금 납부(임차) 목적 인출이 42.4%로 많았고, 회생절차에 따른 인출도 18.6%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60세 이상의 경우 전·월세 보증금 납부(임차)가 29.2%, 장기요양 비용 마련이 12.7%로 높게 나타났다. 직장을 다니고 있음에도 보증금 납부나 장기요양 비용 등 급전 조달을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하면 수령금액이 줄고, 연금보다는 일시금 형태로 받게 돼 노후안전판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매월, 분기별 등 연금 방식으로 퇴직연금을 수령하는 가입자들은 평균 1억4891만원을 받지만 한 번에 받는 일시금 수령 방식은 평균 1833만원에 불과해 차이가 크다. 김대환 동아대 교수는 지난 5월14일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세미나에서 "일시금 인출을 지양하고, 적립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등 가능한 장기간 가입자가 퇴직연금 제도를 유지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도 연금 담보대출 활성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경우 일반 신용대출보다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금리나 한도면에서 더 유리하다"며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고 수급 개시 연령이 됐을 때 연금 형태로 받는 것이 가입자 입장에서도 가장 유리하고 합리적이다. 업계에서도 계속 건의해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중도인출은 연금 사업자 입장에서도 일종의 고객 이탈로 받아들인다"며 "고객 이탈 방지라는 측면에서도 좋고, 실행의 측면에서도 연금대출은 담보가 있는 상품이라 설계나 시행이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