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에서부터 이젠 자는 것까지 무엇하나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가습기살균제와 생리대, 살충제 계란에 이어 이번엔 침대에서까지 위험한 방사선물질이 검출되면서 '믿고 쓸 제품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호소가 쏟아진다.
대진침대 일부 제품에서 기준치의 최대 9배가 넘는 방사선 물질 ‘라돈’(Rn)이 검출됐다. 라돈은 폐암을 일으키는 확정물질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이번 ‘라돈 침대’ 파문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비화되며, 화학 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일컫는 이른바 ‘케모포비아’가 다시 확산되는 조짐마저 나타난다.
◇피폭선량 최대 9.35배 ‘방사능 침대’…소비자 불안감 커져=지난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대진 침대 방사능 조사결과에서 라돈에 의한 피폭선량이 연간 최대 9.3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방사선 물질은 매트리스 속커버 안쪽에 도포한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출됐다. 파우더 원료는 천연 방사성 핵종인 우라늄과 토륨이 함유된 모나자이트다.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하면 라돈과 라돈의 동위원소인 토론이 생성된다.
침대에서 이 같은 방사선 물질이 나오자 일련의 가습기살균체 사건, 살충제 계란, 발암물질 생리대 등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소비자들의 반발은 더 커진 상태다. 주부 송 모(34)씨는 “편하고 건강에 좋은 침대라고 믿고 싼 제품이 알고보니 가장 위험한 침대였다”며 하소연했다.
◇닷새만에 말바꾼 원안위…관리·감독 당국 허술 대응 도마=‘라돈 침대’ 파문은 관리·감독 당국의 소홀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우선 원안위는 많은 제품에서 방사능이 고농도로 나오는지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또 방사능 침대 1차 조사결과가 나온 지 닷새 만에 말을 바꿔 정부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지난 10일 1차 조사 때만 해도 암을 유발하는 방사능 농도가 기준치(연간 1밀리시버트ㆍmSv) 이내라던 외부피폭량에 대한 입장을 15일 기준치의 최대 9.3배라고 뒤집은 것.
또 1·2차때 조사방식이 서로 달라 관련 제품 검증에 대한 기준·절차가 애당초 마련돼 있지 않은 허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에는 유럽·미국처럼 공산품의 라돈 검사 및 검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모나자이트로 제작한 건강침대 문제는 지난 2007년 발생한 바 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같은 문제가 또다시 일어났다는 점에서 관리당국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닮은 꼴…“보다 강화된 안전지침 필요”=앞서 인체 유해성 논란이 불거진 생리대 조사를 담당한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국내 시판중인 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조사 방식이 부적합하다는 비난 여론을 맞았다. 또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조사 과정에서 서울대 교수가 허위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부 조사 결과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정부와 기업이 우왕좌왕하며 조기수습에 실패한 점, 건강에 치명적인 제품이 수 년간 어떤 규제도 없이 팔린 점 등은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많이 닮아있다”며 “안전문제를 책임지고 점검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을 내뿜을 가능성이 있는 생활용품이 18만종에 달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의 생활방사선 안전관리에 심각한 구멍이 났다”며 “지금이라도 음이온제품 등 방사선 방출 위험 제품들에 대해 철저한 실태조사와 보다 강화된 안전지침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현재 라돈 침대는 기업의 리콜 조치와 별개로 피해보상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집단 손해배상 소송과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이다.
한편, 원안위 측은 “모나자이트 유통현황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일상 생활용품에 모나자이트 사용을 제한하거나 천연방사성물질 성분 함유 표시를 의무화하는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