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리그닌의 부활

조성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박사(책임연구원)
2018.11.23 05:22

화석연료 고갈과 지구온난화가 우리에게 제기한 난제는 온난화 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생성된만큼 줄이는 ‘탄소중립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바이오매스로부터 청정에너지와 화학물질을 얻어내 석유화학을 대체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바이오매스는 화학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과 동물, 미생물 자원을 말한다. 자라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소비해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다. 지구에서 1년간 발생하는 바이오매스 연료는 석유의 전체 매장량과 맞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목질계 바이오매스는 전체 바이오매스 자원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공정 과정에서 다량의 ‘리그닌’이 부산물로 생성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조성무 박사(책임연구원)/사진=KIST

리그닌은 셀룰로오스와 함께 목재를 이루는 주성분이다. 셀룰로오스를 붙잡아 단단한 세포벽을 만들고 나무를 성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3억년 전(석탄기)에는 리그닌을 분해·소화시키는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쓰러진 나무들이 썩지 못해 그대로 퇴적되고, 오랜 세월 열과 압력을 받아 석탄으로 변했다. 석탄기 이후에는 리그닌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면서 퇴적된 나무들이 썩어 없어져 석탄이 생성되지 않았다. 리그닌에 의해 생성된 석탄은 인류에게 축복으로 다가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자 오늘날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 목재에서 리그닌을 제거하고 셀룰로오스만을 추출해 펄프 및 제지를 생산하는 산업에서 리그닌은 매우 골치 아픈 물질이 됐다. 목재를 약제와 함께 고온·고압으로 삶아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리해 펄프를 제조하는 데, 이때 리그닌이 고농도로 용해된 흑액이 다량 발생한다. 흑액은 펄프공장에서 사용하는 스팀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연료로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대량의 흑액은 펄프공장의 생산성에 큰 장애물로 대부분 폐기된다.

전세계적으로 발생되는 리그닌은 대략 1억4000만톤(t)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 제지업체인 무림P&P 울산공장에서만 연간 71만t 가량의 리그닌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리그닌으로부터 석유화학 대체 물질을 제조하려는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의 바이옴 바이오플라스틱사는 리그닌에서 유기화학물을 추출해 재활용이 가능한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2013년부터 캐나다 UBC대학에 바이오리파이너리 랩을 설치하고 리그닌 활용 연구를 지속해온 결과, 항공유, 나일론 등 제조에 이용 가능한 화학물질들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성균관대에서도 리그닌을 이용한 자외선 차단제 개발에 성공, 자외선 차단 필름·코팅제, 화장품 원료 등을 생산하는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리그닌을 탄소섬유로 활용하는 연구도 주목받는다. 스웨덴 인벤티아 및 스웨리아 씨콤 연구소의 경우 리그닌으로부터 개발한 탄소섬유를 자동차와 샌드위치 패널 등에 적용하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에서도 저비용 탄소섬유 개발 연구를 수년 간 수행하며 리그닌을 이용한 고성능 탄소섬유·소재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석탄기에 리그닌은 인류에게 산업혁명의 원동력인 석탄을 선사했다. 시간이 흘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리그닌은 우리에게 또한번의 활용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 문명에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할 리그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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