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어린 딸에게 말을 걸었다. “나연아 잘 있었어? 엄마 나연이 보고 싶었어”. 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손을 뻗어 휘저었다. “엄마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커다란 고글을 쓴 엄마의 앞에는 4년 전 세상을 떠난 나연이가 서 있다.
지난해 2월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의 장면은 전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VR(가상현실) 기술로 세상을 등진 딸과 엄마,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을 실현시켰다.
유족의 의사를 반영해 제작한 콘텐츠인만큼 심정적 위안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반면, 일각에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업 방송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 윤리적 측면에 타당한 가에 대한 지적도 있다. 고인을 미디어로 소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 심리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너를 만났다'는 지난 2월 시즌1에 이어 지난달 시즌2를 시작했다. VR 기술로 재회한 가족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호응 덕에 VR은 '선한' 디지털 기술로 각광받으며 휴머니즘을 가미하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웠다. 국내 VR(가상현실) 콘텐츠 대중화의 시작점인 셈이다. 실제 시즌1은 지난해 12월 열린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시상식에서 TV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글로벌 판로를 뚫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망자를 부활시키는 VR 콘텐츠의 대중화, 상용화에 앞서 윤리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잊힐 권리'의 차원에서 대상이 망자일 경우 개인의 초상권을 복원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망자가 사후 본인의 콘텐츠가 방송에 공개되길 원하지 않았을 수 있어서다. 가슴속, 기억에 묻은 망자를 상업적 VR서비스로 복원시키는 것은 도리어 망자를 소환한 이들에게 정신, 심리적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사망한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잊힐 권리를 택한 대표적 예다. 타계한 스타들이 콘텐츠로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유서에 자신의 생전 모습을 2039년까지 어떤 영역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VR 연구자인 류은석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이미 기술적으로 고인과의 쌍방향 소통뿐 아니라 고인의 사소한 표정·습관, 대화 스타일 등까지 재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VR 복원이 유족이나 망자의 잊고 잊힐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너를 만났다'는 당초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고인에게 못다한 말을 VR을 통해 전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일종의 심리 치유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실제 VR은 심리 치료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의료계에서는 VR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 엘리베이터에 못 타는 사람에게 HMD로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타는 VR 영상을 보여주면서 가상현실 속에서라도 조금씩 올라갈 수 있는 시간과 높이를 높여가는 식이다.
다만 망자를 소환했을 경우는 좀 다르다는 지적이다. 유족들이 VR을 통해 망자를 재회하면서 일시적으로 슬픔을 완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향후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현태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돌아가신 분을 만나고 싶어서 만날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애도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도 유족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며 "VR로 고인을 복원하는 것이 상업화되고 보편화될 경우 이런 측면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