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듣지 않는 노인 우울증…알고 보니 뇌 속 '이것' 때문

박건희 기자
2025.08.19 09:17

허원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아주대 의료원, 신호 수용체 'FGFR1' 메커니즘 확인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지만 우울증의 발병 원인을 뇌 속 분자나 단백질,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하는 이론은 많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령 우울증 환자에게 기존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국내 연구팀이 밝혀냈다.

KAIST(카이스트)는 허원도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아주대 의료원과 함께 극단 선택을 한 환자의 뇌 조직을 분석해 우울증의 새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익스페리멘탈 앤 몰리큘러 메디슨'에 지난 15일 게재됐다.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지만 우울증의 발병 원인을 뇌 속 분자나 단백질,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하는 이론은 많지 않다.

KAIST 공동연구팀은 극단 선택을 한 환자 뇌 조직의 RNA(리보핵산) 염기와 면역조직을 분석했다. 또 빛을 쏴 특정 세포를 제어하는 '광유전학 기술'을 적용해 신경 회복을 유도하는 신호 경로를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 중에서도 '치아이랑'(DG)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치아이랑은 해마 안에 정보가 처음으로 들어올 때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는 공간이다. 감정조절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

연구팀은 우울증에 걸린 실험용 쥐를 이용해 스트레스가 생길 때 치아이랑 부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했다. 그러자 세포 안의 성장·분화 명령을 전달하는 'FGFR1'이라는 신호 수용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눈에 띄게 늘어나는 현상이 확인됐다.

FGFR1를 인위적으로 제거했더니, 실험용 쥐는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상태가 됐고 우울 증상도 가속했다. 이는 FGFR1이 정상적인 신경 조절 및 스트레스 저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어 연구팀은 FGFR1을 빛으로 활성화하는 'optoFGFR1' 시스템을 개발했다. FGFR1이 부족한 우울증 쥐 모델에 이를 활성화하자 항우울 효과가 있었다. FGFR1 신호만 활성화해도 쥐의 우울 행동을 개선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우울증 쥐에게서는 FGFR1 신호를 활성화해도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단백질 '넘(Numb)'이 노화된 뇌에서 과도하게 발현돼 FGFR1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후 뇌 표본을 분석한 결과 /사진=KAIST

실제 연구팀이 사망한 인간의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나이가 든 우울증 환자에게서만 넘 단백질이 과발현됐다. 연구팀이 쥐 모델에 이 단백질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절 도구를 발현하고 동시에 FGFR1 신호를 활성화하자, 나이 든 우울증 쥐의 신경 발생과 행동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허원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 신호 경로의 교란에 의해 발생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특히 고령 환자에게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분자적으로 규명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ASTRA 및 바이오 의료 개발 기술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