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AI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수천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반도체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지방 AI 인프라 구축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투자보다 중요한 것은 수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력이 부족한 수도권에 AI 기업과 고객이 몰려 있는 반면, 지방은 전력 여유가 있지만 수요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해서다.
AI 인프라 수요는 폭발적인 증가세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2025년 4660억달러(약 723조원)에서 2030년 3조3790억달러(약 5241조원)로 연평균 48% 성장할 전망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의 설비 투자가 이어지면서 HBM을 비롯한 AI 반도체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기흥·화성·평택·용인에 이어 서남권을 새로운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검토한다. 천안·온양에는 HBM 생산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에 1000조원, 반도체 공급 확대에 1100조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계획을 제시했다. 전국에 총 15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용인·청주·서남권을 잇는 AI 메모리 생산벨트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 만큼 수도권보다 지방이 유리하다. 정부 역시 AI 데이터센터를 지방 거점 중심으로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시장의 움직임은 다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데이터센터 전기사용신청 현황'에 따르면 기업들이 원하는 곳은 여전히 수도권이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데이터센터 1차 기술검토 신청 736건 가운데 522건(71%)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그러나 수도권 본심사에서 58.3%가 탈락했다. 서울에서 통과한 사례는 단 1건에 그쳤다. 반면 비수도권은 29건 가운데 26건이 통과해 통과율이 89.7%에 달했다.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트레이닝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부지가 우선이다. 반면 실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론(Inference) 데이터센터는 이용자와 가까울수록 응답 지연(Latency)을 줄일 수 있다. 국내 주요 AI 기업과 클라우드 고객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이유다.
사업성도 변수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전력 심사만 보면 지방이 훨씬 유리하지만 데이터센터는 고객이 있어야 운영된다"며 "장기 임차 계약이 확보돼야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가능하고 투자도 집행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방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전력만으로는 부족하다. AI 기업과 인재, 네트워크, 실제 수요가 함께 형성돼야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도 같은 지적을 내놓는다. 경제계 6개 단체는 최근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전력·용수·부지 등 기반시설과 제도적 지원이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