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삽입한 '세포 크기' 센서가 신경세포 속 정보처리 과정까지 읽어낸다. 국내 연구팀이 이같은 성능을 구현하면서 제작 비용은 기존의 100분의 1로 낮춘 광반도체 기반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개발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이창혁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이 전기 신호와 빛 신호를 하나의 반도체 칩에서 동시에 읽어내는 차세대 BCI 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실렸다.
BCI는 흔히 '뇌 임플란트'로 알려졌다. 뇌 속에 심은 칩을 이용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로봇 팔, 전동 휠체어 등 IoT(사물인터넷)로 연결된 외부 기기를 제어하거나 뇌 심부를 자극해 치매·파킨슨 등 뇌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CEO(최고경영자)가 이끄는 '뉴럴링크'가 대표적인 BCI 기술 기업이다. AI(인공지능)의 뒤를 이을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으며 오픈AI의 샘 알트먼 CEO도 BCI 스타트업 '머지랩스'를 창립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은 '싱크론'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크론은 미국 BCI 스타트업으로 최근 애플과 손잡고 뇌파 기반의 기기 제어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한국은 원천기술 개발 단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출범한 'K-문샷 프로젝트'의 12대 핵심 과제 중 하나가 BCI다.
이 가운데 KIST가 전기 신호와 빛 신호를 하나의 칩에서 동시에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수백억 개 신경세포가 보내는 전기 신호를 일일이 읽어야 뇌 칩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기존 생각을 넘어섰다.
연구팀은 이를 '카카오톡' 메시지에 비유했다. 신경세포의 신호를 모두 읽으려는 건 카카오톡 메시지가 언제, 몇 번 오는지만 온종일 들여다보는 행위와 같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그보다 중요한 건 메시지의 내용"이라고 했다. 신경세포가 언제 신호를 보냈는지 뿐만 아니라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밀한 정보처리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빛 신호'다. 전기 신호가 세포의 활동 시점을 보여준다면 빛 신호는 '세포의 종류'를 보여준다. 다만 빛 신호를 BCI에 적용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빛은 뇌 조직을 통과하며 산란되기 때문에, 뇌 깊숙한 곳까지 접근하지 못한다.
연구팀은 평소 개발하던 CMOS(상보형 금속산화막 반도체) 기반 이미지 센서를 떠올렸다. 신호 증폭·변환을 맡는 처리 회로를 칩 하나에 넣는 표준 회로 기술로, 오늘날 대부분 반도체 칩에 쓰인다. 연구팀은 "빛이 뇌를 통과해 오길 기다리는 대신, 센서를 직접 뇌 속에 집어넣어 세포 바로 옆에서 빛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두께의 실리콘 침 13개에 빛 감지 소자 832개를 함께 집적했다. 전기 신호와 광학 신호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칩이다. 연구팀은 "미국 뉴럴링크·머지랩스도 풀지 못한 '신경세포 종류 구분' 한계를 한국의 광반도체 융합으로 해결한 첫 사례"라고 했다.
아울러 범용 CMOS 공정에 3D프린팅 기반 후공정 기술을 적용해 칩 제작 비용도 기존 대비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또 신호처리 칩을 뇌 밖에 두고 전극만 삽입하는 뉴럴링크의 방식과 달리 연구팀이 개발한 반도체 칩은 뇌 속에 직접 최소 면적으로 이식할 수 있다. 신경세포 내부의 정보처리 과정을 읽을 수 있는 세포 크기 센서를 뇌 속에 배치하는 것이다.
실제 살아있는 쥐의 뇌 부위 3곳에 칩을 이식한 결과 마취 깊이에 따른 뇌파 변화와 시각 자극에 따른 신경세포 반응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었다. 이식 1주일 뒤에도 염증 반응과 운동 기능은 정상으로 나타났다.
이창혁 책임연구원은 "신경세포의 종류·위치·시점을 동시에 해독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치매, 파킨슨병, 우울증 등 뇌 질환을 정밀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K-문샷 BCI 미션의 PD(총괄관리자)인 조일주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도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과기정통부의 K-문샷 BCI 미션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