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하는데 여성 제약 영업사원 중에 성추행, 성희롱 당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업계가 폐쇄적이고 좁아서 미투에 참여하는 순간 그냥 끝입니다”
국내외 제약사에서 10여년 근무한 여성 영업사원의 말이다.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로 확산되지만 제약업계는 유난히 조용하다. 제약업계는 타 산업군보다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이다. 성희롱 발생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회사 임원이 회식자리에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한다거나 노래방에서 껴안는 행위. 여기까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제약 영업사원들은 더 특수한 상황에 몰려 있다. 의료인으로부터 당하는 경우다. 갑의 횡포에 성희롱이 더해졌다.
사례는 다양하다. 제품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며 저녁 술자리에 불러내 스킨십을 시도하거나 주말에 연락해 만나자는 건 흔하다. 어떤 의사는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자 저녁 늦게 여성 영업사원 집 앞으로 찾아오는 스토커 수준의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여성 영업사원들은 미투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도 말처럼 쉽지 않다. 영업사원이라는 전문직종 특성상 경력 단절 때문에 영업을 포기하기 어렵다. 업계가 작아 '미투 주인공'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으로 타사 이직도 쉽지 않을 거라고 단정한다.
의료인으로부터 성희롱은 더 예민하다. 회사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회사조차 보호해줄 자신을 보호해줄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다. 사방이 꽉 막힌 처지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무턱대고 '밀알이 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노조가 됐든 경영진이 됐든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벌을 가하는 조직적 시도가 필요하다. 첫 단추만 채워지면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다. 의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