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 불릴 정도로 경계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마른 몸, 저체중은 어떨까? 의료계는 비만만큼 저체중도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지는 데다 치료를 견딜 체력이 부족해 사망 위험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마른 체질'이 고민인 사람도 있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도 문제다.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이민경 교수와 함께 저체중의 위험성을 조명한다.
비만도는 보통 체질량지수(BMI, 체중(kg)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대한비만학회를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 기관은 일반적으로 BMI 18.5~23을 정상 체중으로, 이보다 낮은 BMI 18.5 이하를 저체중으로 잡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건강검진 수검자 1694만7184명 가운데 저체중은 56만3478명으로 3.3%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19세 이하가 1040명, 20대 15만2290명, 30대 11만9290명, 40대 10만9947명, 50대 7만8430명, 60대 5만3958명, 70대 이상 4만8523명을 기록해 젊은 층이 노년층보다 더 많았다. 수검 인원이 나이가 들수록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율로도 10~30대 젊은 층의 저체중이 두드러진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의 3배 이상이었다.
체질·다이어트 등 원인과 관계없이 저체중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 이 교수는 "장기간 저체중 상태가 지속되면 각종 암과 감염성 질환, 심혈관질환은 물론 근감소증, 골다공증, 배란 장애?무월경, 치매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심지어 이 모든 문제로 인해 저체중의 사망위험은 비만보다 크다고 보고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먼저 골다공증이다. 뼈는 자극받아야 튼튼해지는데, 체중이 실리지 않으면 골밀도가 축적되지 않아 골다공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조골세포의 왕성한 활동으로 뼈의 양과 질이 결정되는 성장기에 깡마른 체형을 오래 유지하면 나이 들어 뼈가 물러지기 쉽다. 이 교수는 "다수의 연구에서 저체중 여성일수록 골다공증 위험이 크다고 보고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근감소증이다. 저체중일 땐 단백질, 칼슘, 비타민D 등 근육을 형성하는 영양소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근육 세포가 위축되고 근육량이 주는 근감소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심한 근감소증은 건강을 무너뜨리는 '방아쇠'다. 뼈를 보호하지 못해 낙상으로 인한 골절 위험이 커지고 기초대사량이 줄어 혈압, 혈당, 체중이 오르내린다. 병에 걸려도 버틸 체력이 부족해 약물·수술 등 적합한 처치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면역력 저하도 저체중을 위협하는 건강 문제 중 하나다. 이 교수는 "저체중 자체가 원인이라기보다 영양 섭취를 충분히 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면역 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감염에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저체중인 사람은 결핵이나 간염 같은 감염성 질환에 더 잘 걸리는 것으로 보고된다.
저체중일 땐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도 위태로울 수 있다. 첫째, 저체중은 치매 위험을 높인다. 체내 영양소가 적어서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D, 비타민E 등이 부족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에서 45~66세 성인 195만8191명을 1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BMI 20 미만인 저체중군은 20~24.9인 정상체중군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34%나 높았다.
둘째, 최근에는 저체중이 섬망과 연관이 있다는 대규모 연구도 발표됐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주영 교수 연구팀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50세 이상 5622명의 환자를 분석한 결과 저체중의 섬망 발생률은 정상 체중보다 1.5배 더 높았다. 섬망은 정신 능력에 장애가 발생해 의식과 인지 기능이 갑자기 변하는 상태를 말한다. 장소·시간을 혼동하고 사람을 못 알아보거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진양철 회장(이성민 분)이 섬망이었다.
의도치 않은 저체중은 질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당뇨병, 감염성 질환, 심혈관질환, 신장 질환, 암 등 수많은 질환이 체중 감소와 연관돼 있다. 당뇨병이 생기면 소변량과 빈도가 늘어 체중이 준다. 갑상샘항진증일 땐 과도한 땀 배출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식욕 감소, 위장관 질환으로 인한 영양소 흡수 저하 역시 저체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교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체중이 5년간 5% 이상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18%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아무 이유 없이 1년에 체중의 4~5% 이상 빠지면 질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체중을 예방, 관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과 식단이 필수적이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을 골고루 섭취하되 단백질을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 중장년층의 경우 권장되는 일일 단백질 섭취량은 체중 1㎏당 1.0~1.2g 정도로, 체중이 60㎏이라면 하루에 60~72g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교수는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은 신진대사가 활발해 근육의 단백질이 쉽게 분해된다"면서 "한 번에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보다 끼니마다 조금씩 나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