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국민 목숨 볼모로 잡겠단 의협의 오만

정심교 기자
2023.11.23 03: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1일 보건복지부가 전국 40개 의과대학들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40개 의대가 제시한 2025학년도 증원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에 달했다. 심지어 이들 각 대학은 정원을 계속 늘려 2030학년도까지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을 추가 증원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실제로 얼마나 늘릴지는 올해 말, 내년 초나 돼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지만 이번 수요 조사를 의대 증원에 참고할 근거로는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수요 조사가 의사를 배출하는 첫 단계를 맡고 있는 의과대학의 '속마음'이 데이터로 증명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간 '의료계의 입장'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대변해왔다. 전례를 되짚어보면 의협은 앞선 정부에서 의대 정원을 줄일 때마다 반가워했다. 2000년 의약 분업 입법 이후 의대 정원을 점차 줄여 현재의 의대 정원(3058명)을 확정한 2006년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보건의료의 문제가 단지 병원이나 의사 수를 증설·증원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사 수를 늘릴 게 아니라 현재의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또 의협은 과거 정부가 '의대 정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직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의약 분업 후인 2003년, 정부가 "2007년까지 의과대학 정원을 10% 수준인 351명 감축하겠다"고 결정한 데 대해 의협은 "정부가 의대 정원 감축의 필요성을 인정해 기존의 '증원 정책'에서 '감원 정책'으로 전환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10% 감축에서 만족하지 말고, 30% 감축 방안을 단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수요 조사 결과는 '의료계를 대변한다'는 의협과 의대 간의 온도 차가 크게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료계의 내분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협은 21일 정부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한 시간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과학적 분석은 온데간데없고, 대학과 병원이 원하는 만큼,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가 바라는 만큼이 의대 정원의 적정 수치가 됐다"며 "정부가 의대 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 의협은 14만명 의사들의 총의를 한데 모아 의료계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2020년보다 더 강력한 의료계의 강경 투쟁에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의협은 날을 세웠다. 총파업을 또다시 무기로 앞세운 것이다.

의대 정원의 적정한 증원 규모는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짜야 한다. 복잡한 셈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번 의대 수요조사 결과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큰 폭의 증원을 원한다는 의대의 속내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의대의 수요조사 결과만으로 총파업을 운운하며 또다시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 의협의 행태다. 의협이 의료계 전체를 대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생각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 설사 의협이 의료계를 대변하겠다 해도 국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을 권리는 없다.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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