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뇌는 무슨 사이일까? 간에 생긴 질환이 뇌 질환의 신호탄일 수 있을까?
'비알코올 지방간'이 있는 60세 이상층은 치매 발생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방간은 간에 지방이 과도하게 낀 질환으로, 술이 원인인 알코올 지방간과 달리 비알코올 지방간은 술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에서 발생한다. 과도한 열량 섭취가 주원인인데, 전체 인구의 25%가 비알코올 지방간을 앓고 있을 것으로 의학계는 추산한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비알코올 지방간 환자군과 건강한 대조군을 비교했을 때 비알코올 지방간 환자군의 치매 발생 위험도가 약 1.5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비알코올 지방간은 대사성 질환(당뇨병·비만·고지혈증·고혈압 등)과 연관 깊다. 치매 역시 대사성 질환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비알코올 지방간이 치매 발생과 연관됐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봤다.
이 병원 소화기내과 이정일·이현웅 교수팀은 치매와 비알코올 지방간 모두 '대사성 질환'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해 치매와 비알코올 지방간 사이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팀은 2009년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60세 이상 연령층 10만7367명 가운데 알코올 중독, 만성 B·C형 간염 보유자, 혈관성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뇌졸중 환자를 제외한 6만5690을 대상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연구팀은 '지방간 지수(FLI; Fatty liver index)'를 사용해 지방간을 진단할 수 있는 5837명과, 지방간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4만1551명 등 총 4만7388명을 최종 연구집단으로 규정했다. 지방간 지수란, 비알코올 지방간을 예측하는 지표 중 하나로 체질량지수(BMI), 허리둘레, 중성지방, 감마지티피(GGT: γ-glutamyl-transferase) 수치를 이용한다.
최종 연구집단 중 치매 증상 그룹은 15.2%(7209명)였다, 연구팀은 대상자를 연령, 성별, 체질량지수, 수축기·이완기 혈압, 공복혈당, 고혈압, 당뇨병, 흡연 여부와 경제 상태 같은 변수를 대입해 치매 질환을 지닌 실험군 2844명과 대조군 1만4220명을 최종 비교·연구했다.
연구 결과, 치매 질환을 보인 실험군 2844명 중 비알코올 지방간이 아닌 비율은 93.3%(2652명)이었고 비알코올 지방간 환자는 6.8%(192명)이었다. 대조군 1만4220명 가운데 비알코올 지방간이 아닌 비율은 94.5%(1만3436명)이었으며,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지닌 비율은 5.5%(784명)였다. 실험군에서 비알코올 지방간은 6.8%, 대조군에서 비알코올 지방간은 5.5%였다.
연구팀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아닌 그룹과 비알코올성 지방간 그룹에서 각각 치매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아닌 그룹을 기준으로 설정했을 때, 지방간을 지닌 그룹은 치매 발생확률이 1.493(1.214-1.836, 95% 신뢰구간)을 기록해 약 1.5배 높았다.
또 연구팀은 전통적으로 치매의 위험인자로 학계에 보고된 당뇨병 유무에 따라 비알코올 지방간이 치매 발생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봤다. 당뇨병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비알코올 지방간이 있는 군에서 치매 발생확률이 의미 있게 높았다.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 대해 "60세 이상 연령층에서 당뇨병 없이 비알코올성 지방간만으로도 치매 발생률이 높아짐을 증명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구를 주도한 이정일 교수는 "더 깊은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같은 대사성 질환인 당뇨병이 치매 발생에 영향을 준 것처럼, 비알코올 지방간도 치매 발생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뇨병이나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의 첫걸음은 비만도를 낮추고 운동으로 근육량 감소를 막는 것"이라며 "치매 발생률을 낮추려면 적극적인 생활 습관 교정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 결과는 '싱가포르 의학 아카데미 연보(Annals Academy of Medicine Singapore)' 최신 호에 '대한민국 노령 인구에서 지방간과 치매 발생의 관계'란 제목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