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기능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행동'이 치매 발병 위험성을 알려준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2008년 아르헨티나의 정신과 의사 타라가노(Taragano)는 치매로 평가할 정도의 인지기능 저하가 '없는' 노인들에게서, 생애 처음으로 정신행동 증상이 발생하면 향후 치매로 진행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를 '경도행동장애(Mild behavioral impairment)'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는 치매는 아니지만 유의미한 인지 저하가 있을 때를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라고 명명하는 것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2016년 미국치매협회(NIA-AA)는 경도행동장애 진단 기준을 정립했습니다. △첫째, 50세 이후 행동·성격 변화가 뚜렷하게 관찰될 것 △둘째, 이런 변화가 6개월 이상 지속할 것 △셋째, 이런 변화가 의욕 감소, 감정 조절 어려움, 충동 조절 어려움, 사회적 부적절함, 환각 같은 지각 이상, 망상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할 것 △넷째, 이런 증상으로 인해 사회·직업 활동과 대인관계의 장애가 초래될 것 △다섯째, 치매로 진단할 정도의 인지 저하가 없을 것 등입니다.
뚜렷한 인지 저하가 없는데도 우울·불안·정신증 등의 증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는 어르신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초기 성년기부터 발생해 호전·악화를 반복한 정신과 질환이 재발할 경우도 많지만, 실제 전혀 증상이 없던 사람이 처음 내원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정신과 외래를 내원하는 노인 환자 가운데 인지 저하가 전혀 없는 경우는 20%, 경도인지장애에 해당하는 사람 중에선 50%가 경도 행동장애의 진단을 만족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가장 흔한 증상들로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었고, 그다음으로 의욕 감소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 지각·사고 이상 등이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로 내원한 노인 환자가 경도행동장애라고 판단하더라도, 현재까지는 이런 진단·치료를 선제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경도행동장애라도 치매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는 유의미한 인지 저하가 없을 경우에는 알츠하이머 관련 치료 약물 등의 사용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아직 경도행동장애에 대한 진단·치료에 있어서 합의된 가이드라인은 없는데, 현재 외국에서는 다양한 치매 관련 임상 시험에서, 경도행동장애를 대상군으로 포함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향후 경도행동장애와 관련된 새로운 임상 진료 방침이 도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노년기에 처음 발생한 행동·성격의 변화가 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평가받으면서 치매로의 진행을 민감하게 관찰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조치입니다. 50세 이후 행동·성격의 뚜렷한 변화가 6개월 이상 이어져 사회 활동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권장됩니다.
글=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도움말=변기환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