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들렸다고? 편견은 끝…80%가 약으로 일상 되찾은 '이 병'

정심교 기자
2026.02.03 07:00

[정심교의 내몸읽기]

뇌전증은 유발 요인 없이 반복적으로 뇌에서 기원하는 발작이 발생하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뇌전증(epileps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엔 악령에 의해 영혼이 사로잡힌 것으로 여겼다. 국내에서도 '간질(癎疾)'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2010년 질환에 대한 오해와 낙인을 줄이기 위해 '뇌전증(腦電症)'이라는 용어로 통일됐다.

현재 뇌전증은 △치매 △뇌졸중 △편두통과 함께 국내 4대 만성 뇌질환으로 꼽히는 신경계 질환이다. 전 세계 인구 약 1%가 뇌전증을 앓을 만큼 흔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환자 수는 2020년 이후 매년 증가해 2022년 15만명대에 이르렀다.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변정익 교수의 도움말로 뇌전증에 대해 알아본다.

쓰러지는 발작만 아니다… 전신·부분발작의 차이

△저혈당 △저나트륨혈증 △알코올 금단 등 뚜렷한 유발 요인 없이 발생하는 '비유발성 발작'이 2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두 차례 이상 반복될 때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외상·뇌졸중·뇌종양 등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모든 질환에서 뇌전증이 나타날 수 있다. 전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으나 아직 절반가량에서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변정익 교수는 "뇌전증은 발작의 종류와 발생 부위에 따라 치료 반응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환자 특성에 맞춘 정확한 분류와 치료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발작은 개인마다 증상이 다르고 예측할 수 없게 갑자기 나타나며, 지속 시간도 개인별 차이가 크다. 발생 범위에 따라 크게 전신발작과 부분발작으로 나뉜다. 전신발작은 대뇌 깊은 부위에서 발생해 양측 대뇌로 동시에 퍼진다. 대표적으로 전신 강직간대발작이 있으며, 소아에게 비교적 흔한 멍한 상태의 소발작이나 근육이 순간적으로 수축하는 근간대성 발작도 여기에 포함된다.

부분발작은 대뇌피질의 특정 부위에서 시작해 발생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발작 증상은 멍해지는 상태나 입맛을 다시는 반복 행동, 한쪽 팔다리의 떨림뿐 아니라 저림, 통증, 공포감, 환청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멍함·번쩍임·이상 감각… 경련 없는 '숨은 증상' 주의

흔히 뇌전증을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큰 경련'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눈앞이 번쩍임, 비특이적인 어지럼증, 한쪽 몸이 저리는 이상 감각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잖다.

이러한 증상은 뚜렷하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나타나 방치하기 쉽다. 변정익 교수는 "뇌전증 발작은 반드시 눈에 띄는 경련을 동반하지 않기에, 전형적인 소견이 없더라도 원인 없는 신경계 증상이 반복된다면 전문의 진단이 필요하다"며 "환자 대다수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충분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처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뇌전증의 의학적 정의는 자발적 발작이 하루 이상 간격을 두고 두 번 이상 나타나거나 한 번의 자발적 발작이 있더라도 뇌영상에서 이상이 있거나 뇌파에서 경련파가 확인되는 등 유사한 발작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을 말한다. 이를 위해 발작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발작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상 의료진이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우며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호자가 증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병력 청취와 문진이 중요하다. 따라서 보호자가 발작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억해 두거나, 가능하다면 발생하는 증상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해 의사에게 보여주면 정확한 진단에 큰 도움 된다. 이를 바탕으로 뇌전증 여부를 판단하고 실신 등 다른 질환과 감별한다.

80%는 약물로 조절… 술·잠·스트레스 관리해야

뇌전증 치료는 약물치료에서 시작된다. 전체 환자의 70~80%는 항발작제 복용만으로 발작이 충분히 조절된다. 현재 20종 가까운 항발작제가 사용되며, 환자에게 맞는 약물을 찾아야 한다. 항발작제는 환자별 맞춤 선택이 중요하며, 부작용 발생을 막고 안정적인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저용량부터 점진적으로 양을 늘려 적정 유지 용량을 결정한다.

약물 사용 중에도 경련이 반복된다면 약물 용량을 늘리거나 다른 기전의 약물을 추가한다. 항발작제를 2가지 이상 사용해도 발작이 지속되는 '난치성 뇌전증'일 땐 수술을 검토한다. 정밀 검사를 통해 발작 발생 부위가 명확하고, 기능 손상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부위를 제거해 발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수술이 어렵거나 약물 효과가 제한적인 일부 환자에게는 미주신경자극술 또는 전문의 감독하에 케톤 생성 식이요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뇌전증은 금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조절 등 자가 관리가 필수적이다. 수영·등산처럼 사고 위험이 있는 활동은 피하거나, 보호자가 동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운전은 1년 이상 항발작제를 사용하며 경련이 없는 안정된 시기에 해야 하며, 임신은 가능하지만 임신 계획 단계부터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해야 한다. 변 교수는 "뇌전증은 적절한 약물치료와 올바른 생활 습관이 병행되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모든 치료 결정은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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