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신약 경쟁이 주 1회 주사제 중심의 GLP-1 시장을 넘어 경구제, 다중작용제, 비(非) GLP-1 계열, 유전자 치료제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젭바운드)가 촉발한 비만약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확인되자, 제약사들은 차세대 시장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투약 편의성과 효능 개선을 넘어 체내에서 치료 물질을 직접 생성하도록 하는 차세대 플랫폼 개발까지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프랙틸 헬스(Fractyl Health)가 개발 중인 세계 최초의 GLP-1 유전자 치료제 'RJVA-001'이 유럽 규제 당국으로부터 임상 1/2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GLP-1 유전자 치료제로 진행되는 첫 인체 투여 임상으로 내달부터 환자 모집을 시작해 하반기 투약 개시를 목표로 한다.
RJVA-001의 차별점은 매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존 GLP-1과 달리 1회 투여만으로 체내 GLP-1 생성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AAV) 벡터를 사용해 췌장 세포가 식사 시에만 반응, GLP-1을 분비하게 하는 것이 핵심 기전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이는 단순한 약물 투여가 아니라 신체 생리학적 시스템 자체를 교정하는 접근 방식"이라며 "임상이 성공할 경우, 평생 정기적으로 주사나 알약을 복용해야 하는 현재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비만신약 시장의 여전한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비만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주 1회 투약이 필요한 주사제형이다. 높은 감량 효과에 폭발적 수요를 이끌어냈지만, 번거로운 투약과 주사방식에 따른 환자 거부감이 한계로 꼽힌다. 또 투약에 따른 위장관 부작용과 중단시 요요현상도 뒤따른다.
위고비·마운자로 폭발력을 체감한 업계는 일찌감치 두 품목 이후 시장 주도권을 잡을 파이프라인 개발에 힘을 실어왔다. 주사 방식이 필요없는 경구제형 개발과 투약 주기를 1개월로 늘린 장기지속형 제제들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방향성은 경구제다. 주사 방식이 필요 없는 경구 비만약은 초기만 해도 흡수율과 효과 유지 문제로 회의론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상용화에 잇달아 성공하며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12월 '위고비필'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했다. 이어 지난달 일라이릴리 '파운다요'(성분명: 오포글리프론) 역시 FDA 문턱을 넘었다.
특히 위고비필은 초기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처방 증가세를 기록하며 경구제 시장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주사 공포감이 있는 환자층까지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구 비만약이 기존 GLP-1 시장의 외연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투약 주기를 늘리기 위한 장기 지속형 경쟁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주류인 주 1회 제형을 넘어 월 1회 수준까지 투약 간격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다수의 월 1회 제형이 임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3개월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투약하는 후보들 역시 초기 연구를 진행 중이다.
효능 자체를 높이기 위한 다중작용제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시장 주류인 GLP-1 단일 기전을 넘어 GIP, 글루카곤 등을 함께 자극하는 방식이다. 식욕을 억제하는 GLP-1과 지방 연소·에너지 소비 증가에 관여하는 글루카곤, 인슐린 분비 및 대사 개선에 영향을 주는 GIP의 효과를 모두 노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체중 감량 속도 및 지속성 개선은 물론, 단일 GLP-1 제제 대비 강한 감량 유지력을 노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후보는 일라이릴리의 '레타트루타이드'다.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겨냥하는 3중작용제로 글로벌 3상이 진행 중이다. 앞서 공개한 3상 톱라인(주요지표)에서 68주 평균 28.7%의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하며, 차세대 비만약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GLP-1 계열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아밀린(amylin) 단독제다. 아밀린은 식욕 조절과 포만감 유지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 GLP-1과는 다른 축의 기전이다. GLP-1 계열이 유발하는 위장관 부작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체중 감소 효과를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가 핵심 변수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앞선 후보는 질랜드파마와 로슈가 개발 중인 '페트렐린타이드'다. 2상을 마친 상태로 올해 하반기 3상 진입이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아밀린 계열이 향후 '포스트 GLP-1' 시장의 핵심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프랙틸 헬스의 유전자 치료 접근법은 현재 개발 중인 비만신약 가운데 가장 진보된 형태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약효 지속시간을 늘리거나 기전을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체내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직 초기 임상 단계인 만큼 실제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비만신약 시장이 여전히 초기 진화 단계에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GLP-1 주 1회 주사제가 혁신으로 평가받았지만 시장은 이미 경구제, 다중작용제, 비 GLP-1, 유전자 치료까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비만 치료제가 단순 체중 감량제를 넘어 장기 대사질환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