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가 정부의 탈모치료 건강보험 급여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암환자나 중증·희귀난치 질환 치료제의 상당수도 건강보험 재정문제로 급여적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탈모약의 건강보험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긴급 도입된 희귀질환약의 70% 이상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단연) 대표는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보장률은 2021년 84%에서 2024년 81%로 떨어졌다"며 "암·중증질환자들이 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탈모약의 급여화 논의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환단연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재정적 영향과 미충족 의료수요와의 우선순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대한 사회적 숙의과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보장률이 낮아지는 중증질환과 암환자에 대한 보장성을 확대하는 구체적 정책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현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 방향성에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환자단체의 반응은 충분치 않은 건강보험 보장률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4.9%다. 암질환 보장률은 75.0%였는데 2021년 80.2% 대비 되레 낮아졌다.
긴급 도입된 희귀·필수의약품 중에서는 70% 이상이 급여적용이 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지난 4월22일 기준 국내에 긴급 도입된 희귀·필수의약품은 96개다. 그러나 이 중 73%인 70개 의약품이 비급여다. 긴급도입 의약품은 국내 허가 없이 해외에서만 판매되는 의약품인데 해당 약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거나 신체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 등일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다.
국내에서 판매되지만 급여적용이 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희귀의약품도 많다. NMOSD(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는 중추신경계에 염증이 발생하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으로 국내 유병률은 2016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3.36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시력저하, 보행장애, 경직, 배뇨장애 등을 유발한다. 5년 이내 약 절반의 환자에게서 실명 또는 보행장애가 발생한다. 재발위험을 약 98.6% 낮추는 약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가 있지만 급여기준이 까다로워 웬만한 환자들은 쓰지 못한다. 1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재발을 겪어야 급여가 가능하고 가격도 연평균 3억3000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장애가 생기기 전에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항암제도 마찬가지다. 유한양행이 국산 항암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와 존슨앤드존슨의 항암제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의 병용요법은 최근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엑손20 삽입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의 표준치료법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존 치료법인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대비 사망위험을 30% 낮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국내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은 병용요법 치료시 급여적용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편 정부는 환자단체 등의 반발을 고려해 오는 7월4일로 예정된 탈모 건강보험 적용논의를 위한 '모두의 토론회' 개최일정을 취소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토론회를 앞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탈모 급여확대에 대한 여러 입장이 충분히 제기된 점을 감안해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