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했길래 공중파 방송이 망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4월1일 밤 12시. 홍콩의 양대 공중파 방송 중 하나인 ATV(Asia Television Ltd) 채널은 끝내 폐쇄됐다. 파란색 정지화면 위에 "프로그램 신호가 중단됐다"는 자막만 뜰 뿐이다. ATV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한 때 홍콩 방송·연예계를 호령했던 이 공중파 TV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TV의 실타래가 꼬인 결정적 사건은 2011년 7월6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TV는 정규 방송 도중 긴급 자막으로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ATV는 이어진 10시30분 정규 뉴스 시간에 또다시 장 전 주석의 사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ATV의 이 보도는 불과 하루 만에 ‘세기의 오보’로 바뀌었다. 중국 정부의 입으로 관영 언론인 신화통신이 사망 사실을 정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ATV는 곧바로 “6일 밤 장쩌민 선생의 별세 보도를 철회한다”며 “시청자와 장쩌민 선생에게 사과한다”고 오보를 인정했다. 장 전 주석은 같은 해 10월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에 모습을 보이며 건재를 알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오보를 낸 ATV의 사주가 왕정으로 바로 장쩌민 전 주석 외조카라는 점이다. 장 전 주석 사망 여부를 어느 매체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ATV는 정반대로 시대의 오보를 날렸다. 이후 ATV는 감당하기 힘든 위기를 맞는다. 홍콩 정부가 ATV에 일제 조사를 벌여 41개 시정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ATV의 공중파 무료 채널 면허가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장쩌민 오보는 상징적 사건일 뿐 ATV 내부는 이미 곪을대로 곪아있었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는 실질적 사주인 왕정의 역할이 한 몫 했다는 평이다. 왕정은 2010년 3월 ATV 지분 52.4%를 확보하며 ATV를 홍콩의 CNN으로 키우겠다고 야심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행보는 CNN과 거리가 멀었다.
시청률의 관건인 드라마 제작을 중단하는가 하면 감봉과 직원 재교육 정책으로 능력 있는 직원들을 내쫓다시피 했다. 한때 700명을 넘던 직원들은 400여명으로 뚝 떨어진데다 충원된 직원들의 경험미숙으로 크고 작은 방송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위기는 숫자로도 입증됐다. ATV의 적자는 2012년 3억4000만 홍콩달러(505억원)에 이어 2013년에는 3억7800만 홍콩달러로 치솟았다.
망하는 기업들이 그렇듯 내부 분쟁도 엿보인다. ATV의 2대 주주인 대만 왕왕그룹 차이옌밍 회장은 2012년 왕정 등의 방만한 경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며 홍콩 법원에 주주 권리 보호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홍콩 법원은 차이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왕정 측에게 지분 10.75%를 제3자에게 매각하라고 주문한다.
왕정은 새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깨진 독에 물을 붓겠다는 투자자는 없었다. 급기야 홍콩 상무경제부는 2015년 3월 ATV의 공중파 무료 채널 면허를 연장하지 않고, 2016년 4월 1일 자로 면허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ATV 몰락의 진짜 이유는 바로 시청자들의 외면이었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자, 광고 수입이 급감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 제작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는 다시 시청률 저하로 이어지며 끝없는 악순환을 낳았다. 가장 참담한 장면은 시청자들이 59년 역사의 ATV 면허 연장에 관심조차 없고, ATV 채널이 사라졌어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개가 넘는 유선방송과 위성TV가 있는 홍콩 TV 환경을 탓할 일이 아니다. 공중파도 고객이 외면하면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여기저기에 대입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