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가 질주하고 있다. 누적 관객 1600만 명을 돌파했다. '극한직업'이 가진 역대 2위 흥행 기록(1626만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매출액은 1556억 원을 넘어서면서 역대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한 한국영화에 찾아온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한국영화는 '천만영화'는커녕,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스크린을 내주는 풍경이 일상화됐다. 더불어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플랫폼의 강세로 극장 자체의 존재 이유가 흔들렸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한국영화 산업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의 흥행 원인을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텍스트 내부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영화가 성공하는 이유가 이야기의 '올바른 구조'에 있다고 본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여정'은 모범답안처럼 여겨져 왔다. 조지 루카스가 여기에 매료되어 '스타워즈'를 만들었고, 이후 할리우드는 이 공식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어 왔다. 소명-입문-귀환의 순환 구조, 명확한 선악의 이항 대립, 결핍의 해소로 끝나는 플롯이라는 프레임은 지금도 블록버스터 영화의 기본 문법으로 통용된다.
'왕과 사는 남자'도 표면적으로는 이 공식을 따른다.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라는 결핍된 영웅, 수양대군과 한명회라는 악의 대립항, 마을 사람과의 유대를 통한 인간적 회복이 만든 이야기에서 흥행의 필요조건을 찾는다. 완성도 높은 서사 구조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보증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슷한 서사 구조를 가진 영화는 해마다 수십 편씩 극장에 걸리지만, 천만 관객을 만드는 영화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오히려 텍스트 바깥의 요인들이 작동한 결과다. 장항준 감독에 대한 대중적 신뢰는 그중 하나다. 그는 영화감독이자 예능인으로, 오랜 시간 쌓아온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한 어떤 신뢰와 호감을 품고 극장을 찾았다. 텍스트 이전에 감독의 페르소나가 먼저 작동했다.
아이돌 출신 박지훈의 캐스팅은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인이었다. 그의 팬덤은 영화를 반복 관람하고, 단종의 실제 역사와 연결 지어 이야깃거리를 생산하고, SNS에 감상을 퍼뜨렸다. 설 연휴에 입소문을 탄 영화는 3·1절 연휴에 다시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전례 없는 역주행을 이어 나갔다. 이런 선순환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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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그린 컴퓨터그래픽의 완성도 논란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영화 속 호랑이 컴퓨터그래픽이 조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흥행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텍스트 구조가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에서라면, 기술적 결함은 서사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정적 약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정서적으로 영화와 깊이 연결된 관객에게 컴퓨터그래픽의 완성도는 부차적 문제가 되었다. 관객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존재이기 이전에, 이미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이제 와 굳이 호랑이 컴퓨터그래픽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
피터 브룩스는 '플롯 읽기'라는 책에서 서사의 추동력은 정해진 구조가 아니라 관객의 욕망, 즉 결말을 향해 가면서도 그것을 지연시키려는 충동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경험하는 관객의 행위 속에서 매번 새롭게 생성된다는 주장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영웅의 여정이라는 구조적 완결성 때문이 아니라,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인들이 충돌하고 교섭하고 재배치되면서 텍스트 안팎에서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종이라는 존재는 '선한 영웅'으로서 관객 각자의 삶과 접속하는 복잡한 감정의 매개가 됐다. 영화의 흥행을 완성하는 주체는 관객이다. 감독은 서사 구조를 설계하지만, 관객은 이야기를 살아있게 만든다. 관객은 텍스트 바깥에서 영화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