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일생 동안 투쟁해왔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종신형을 받기 전 법정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템부족 추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만델라는 추장이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사망한 뒤 템부족 왕을 후견인으로 해 교육을 받았다.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던 그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와 마찰을 빚은 뒤 정학 처분을 당하고 인생행로가 바뀐다. 만델라는 고향을 뒤로하고 무작정 요하네스버그로 상경해 새 삶을 시작한다.
그는 법률가의 꿈을 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인 남아공대학(UNISA) 학사 과정을 이수했다. 이 과정에서 흑인 지식층과 친분을 갖게 되면서 백인정권의 흑인 차별정책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을 창설한다. 법학 학위를 받고 변호자 자격을 얻은 그는 1952년 동료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으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연다.
이후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흑백차별)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흑인 인권운동에 뛰어든다. 그러다 1956년 반역죄로 155명의 인권 운동가와 함께 체포됐다. 이어 몇 차례 체포와 재판 끝에 결국 1964년 '내란혐의'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1964년부터 1990년까지 26년 동안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 만델라는 73세 노인이 돼서야 당시 대통령이던 데 클레르크의 특별사면으로 자유를 얻게 됐다.
국내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 등에 더이상 아파르트헤이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아공 정부가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를 합법조직으로 인정한 것이다.
곧이어 정부는 ANC 등과 협상에 나섰고 1994년 민주적 선거를 실시한다는 합의를 이룬다. 만델라는 1993년 이 공로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데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합의대로 22년 전 오늘(1994년 4월27일) 남아공 최초로 흑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첫 민주적 선거가 이뤄진다. 이 선거에서 ANC는 의회 400석 가운데 252석, 전체 의석 가운데 62%를 차지하게 됐고 간선제에 따라 ANC 지도자인 만델라의 대통령 당선이 결정된다.
한달 뒤 그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의 나이 76세 때였다. 만델라는 대통령 재임 기간 백인사회에 대한 보복을 취하지 않고 '진실화해위원회(TRC)를 출범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백인정권 당시 흑인에 대한 테러와 인권탄압을 자행한 가해자가 TRC에 출두해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경우 사면하는 대화합조치를 취한 것. 이를 통해 남아공은 안정과 평화공존의 걷게 됐고, 남아공 경제는 성장의 길로 전환했다. 만델라는 1999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퇴임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엔 권력욕을 버리고 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및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퇴치 활동과 어린이 교육을 위한 기금마련활동을 하며 '성자'로 불리다 2013년 12월5일 타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