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 미국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1%포인트 차로 접전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의 성추문 사건으로 10%포인트 차이 가까이 앞섰던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국가 기밀을 공무용 이메일이 아닌 사적 이메일을 통해 유출했다는 혐의에 대한 재조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갖가지 추문이 나돌면서 이번 선거는 미국 역대 최악의 선거로 꼽힌다.
이 전에도 '최악의 선거'로 꼽힌 대선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존 케리가 치렀던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다. 12년 전 오늘(2004년 11월2일)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비난 여론 확산 등 부정적 여론을 딛고 재선에 성공한 날이다.
'대통령의 아들'이자 텍사스 주의 알아주는 부호 출신인 부시는 2000년 1월 백악관에 입성했다. 민주당 출신인 빌 클린턴 정부의 8년 집권 후 오랜만에 공화당에 찾아온 기회였다. 집권 초기 '네오콘(신보수)'를 앞세운 부시와 공화당은 세계 정치의 1인자 위치를 확고히 하고 각종 규제 완화 정책으로 금융 등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하지만 부시 정부의 '전과 후'를 구분할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2001년 9월11일에 일어난 9·11 테러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단체가 비행기를 납치해 승객을 태운 비행기를 미국 뉴욕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관통한 사건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최악의 테러로 기억되고 있다.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강경한 안보와 외교 정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다는 명목하에 부시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결정했다. 이후 수만명의 미군이 이라크전에 참전했으며 적어도 수천명의 군인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라크 현지 주민들의 피해도 막대했다.
전쟁 후 여론은 반대방향으로 흘렀다. 국제기구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군 내 가혹행위 등이 밝혀지면서 청년 세대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경한 외교노선을 선택하면서 주변국가들과의 긴장 관계가 확대되는 등 미국의 '전성기'가 쇠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첫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인 2004년 말, 그 누구도 그의 재선을 장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대선 후보 존 케리가 조금 우세했다. 부시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기 직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유력 방송매체는 1968년 베트남 전장 발발 당시 부시의 군 복무 시절 비리를 폭로해 보도했다. '부시가 아버지의 대통령 경력을 등에 업고 좋은 군 보직을 꿰차 베트남 전쟁 참전을 피했으며 군 규정보다 8개월 일찍 제대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수차례 전쟁을 선언하고 안보를 중시했던 그의 정책과도 상반된 행동이었다. 이로 인한 미국 시민들의 반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 보도의 핵심 증인들이 입장을 바꾸고 결정적인 증거의 진위 여부가 엇갈리면서 의혹은 사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막상막하였던 부시와 케리의 대결은 간발의 차로 부시의 승리로 끝난다. 대선 중 플로리다, 오하이오주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나와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재선의 기쁨도 잠시, 부시는 2기 대통령 재임 기간은 1기보다 더 불안정했다.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플로리다주를 강타해 큰 피해를 남겼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져 미국에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부시는 2009년 1월 임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