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초인플레이션', "돈 세는 거 포기, 무게 재는 상황"

조성은 인턴기자
2016.11.03 11:56

경제학자들 물가상승률 200~1500% 추정,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모습과 유사

지폐를 저울에 올려 놓고 무게를 재는 베네수엘라인의 모습/사진제공=블룸버그

남미 베네수엘라가 극심한 초(超)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을 남발한 결과 올 들어 물가가 5배 가까이 치솟으며 경제적으로 큰 혼란에 빠지고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정기적인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마저 중단해 버렸다.

현재 경제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을 200~1500%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올해 인플레이션율을 475.8%로 전망하고 있고, 내년에는 1660.1%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화(bolivar)는 연초부터 지금까지 달러화 대비 약 36% 추락했고, 2013년 초와 비교해서는 무려 57%나 떨어졌다. 3년 새 통화가치가 반토막이 난 셈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화폐단위인 100볼리바르의 가치는 달러화 기준으로 약 10센트에 불과한 상태다.

볼리바르화가 평가절하 되면서 국민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양의 지폐를 지니고 다니는 기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기사를 통해 국민들이 시장이나 마트에서 지폐를 세지 않고 그 무게를 달아 생필품을 사고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카라카스의 외곽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25살의 브레머 로드리게스씨는 빵을 팔고 받은 수백, 수천장의 지폐를 매일 검은 비닐봉지나 박스에 담아서 보관하다가 은행에 입금하러 간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씨는 "입금 전까지는 도난위험 때문에 현금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며 "누군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마약 밀매상으로 착각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쇼핑하러 가는 것도 고역이다. 현금인출기(ATM) 수가 점차 줄어들어 ATM 앞에 수많은 인파가 길게 줄을 서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쇼핑하러 가기도 전에 ATM 대기 줄에서 기운이 빠진다. 현금이 모두 인출된 후 현금이 바로 재입고되지 않고 버려지는 ATM 수도 늘어나고 있다.

베네수엘라 당국은 ATM 부족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최근 편의점이나 약국에서도 현금을 찾을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이것만으로 현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컨설팅 회사인 자본시장금융(Capital Market Finance)의 재무관리담당자 지저스 카지크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시장에서 지폐를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재고 있다는 사실은 베네수엘라 경제가 급진적인 인플레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방증한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모습은 지난 세기 대표적인 초인플레이션 사례로 꼽히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10년 전의 짐바브웨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주 최저임금을 4배로 올렸다. 올 들어서만 벌써 4번째다. 살인적인 물가로 생필품 가격이 연초 대비 5배 가까이 오르면서 기존의 최저임금으로는 한 달치 식량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국은 현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연내 화폐개혁을 단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지난달 초 미국의 한 화폐인쇄소에 500ㆍ1000ㆍ5000ㆍ1만ㆍ2만 단위의 새로운 볼리바르화 발행을 주문했다. 현재 가장 큰 화폐단위는 100볼리바르이다.

한편, 베네수엘라는 화폐발행의 남발로 돈이 넘쳐나지만,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작은 생필품 하나 구매할 자금적 여유가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허덕이고 있다.

2014년 이후 원유 가격의 폭락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 의존 경제가 무너진 결과 3100만명의 국민에게 필요한 충분한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면서 이들은 매일 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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