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일 평행선-美 '주시는 하겠지만…'

김성은 기자
2019.07.14 08:24

'수출관리VS수출규제'…'협의VS설명회' 단어 하나로도 기싸움…美 정부 말 한마디엔 한·일 모두 '촉각'

지난 12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 회의실에서 어색하게 마주한 한일 정부 관계자/사진=로이터

수출 규제(관리) 조치 발동부터 정부 관계자간 공식 첫 회동까지.

한일 양국은 긴박하게 흘러가는 갈등의 시간 내내 엇갈린 견해차를 드러냈다. 양국간 갈등이 국제 여론전으로까지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볼지에 관한 '프레임 전쟁'이 치열하다.

◇안보 기반의 수출 관리냐 보복 차원의 규제 강화냐…日 조치의 태생 두고 '격돌'=지난 11일 일본 산케이는 '한국은 성과없는 비난을 그만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다"며 "군사 전용이 가능한 재료의 수출 관리는 모든 국가가 도입하고 있고 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이를 적절히 운용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적었다.

지난 4일부터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에칭가스 등 세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그동안엔 한 번만 포괄적으로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계약에 대해 심사를 면제 받던 것을 수출 건별로 심사받도록 했다.

한국은 이것을 '규제의 강화'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심사 기간에 90일 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시행 초기여서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고 과거 대비 절차가 복잡해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케이 등 일부 언론에서 '규제', '규제 강화'란 표현을 자제하고 '관리'나 '운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일본 조치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케이는 같은 사설에서 "한국은 일본의 조치가 보복이며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나타냈다"며 "이에 대해 일본은 안보 수출 관리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해 수출 절차 간소화를 인정하고 한국에 대한 우대를 정상으로 되돌린 것일 뿐이라 반박했다"고 강조했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일본 정부가 한국에 실시한 수출 규제는 군사 전용될 우려가 있는 품목의 '무역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관세 인상 등의 통상 정책이 아니어서 독자적으로 (운용의) 판단이 가능하단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WTO 룰을 준수하고 있고 보복조치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듯하나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진 뒤 이같은 조치들이 나왔단 점에서 연관성을 무시하긴 어려워 보인다.

미네기시 히로시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은 12일 기고에서 "경제산업성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사실상의 대항 조치를 발표했다"고 보는 등, 일본 내에서도 두 사안 간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日 "협의도 없고 철회도 없다"…12일 만남의 성격은 무엇?=같은 사안을 두고 시각이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은 또 있다. 12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에서 진행된 한국과 일본 정부간 실무회의다. 지난 4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발동 이후, 양국 정부 관계자가 공식적으로 처음 마주한 자리다.

한국 정부는 이를 '양자협의'라고 규정한데 비해 일본은 '실무진 설명회'라 칭해 회의 시작 전부터 만남의 성격에 시각차를 극명히 드러냈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를 위해 자국이 제도 운용이 가능한 범위에서 마련된 것이라며, 따라서 '협의도 없다'는 강경 태도를 고수중이다.

12일 NHK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 수출관리당국이 이번 운용 재검토에 대해 사실확인을 요구해 사무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라며 "협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선 9일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 강화 조치는 안보 문제로 협의의 대상이 아니며 철회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언론에 따르면 12일 오후 두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당초 예상(약 두 시간)을 크게 웃돌아 5시간 넘게 진행된 것으로 보도됐다. NHK는 이날 오후 7시30분쯤 회의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한국 정부 측 관계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준비된 차량에 탑승,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또 산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 한국 측과 다음 회의를 가질 예정은 없다"고 밝혔다.

/사진=AFP

◇美 역할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기대'=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관심이 쏠린 것은 두 나라를 모두 '우방'이라 칭하는 미국의 역할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미 행정부가 한일 갈등의 중재자로 나설지에 국내외 관심이 쏠렸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의 무역제한 조치는 우리 기업에 피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 체계를 교란시킴으로써 미국 기업은 물론 세계 무역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는 한일 양국간 우호협력 관계 및 한미일 3국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이해를 표명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 김현종 국가안보2차장, 김희상 양자경제외교국장도 미국 출장길에 올라 한일 갈등 국면에서 미국의 지지와 중재의 필요성을 설파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 국무부는 지속적으로 원론적 입장을 내놓는 중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방송(VOA)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미국은 양국 모두의 동맹"이라며 "북한의 도전 앞에 3국의 협력은 필수"라 밝히면서도 '한국으로 수출된 군사전용 가능 물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뉘앙스의 일본 측 주장에 대한 VOA 논평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 11일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미·일 관계 강화를 위해 표면적으로나 이면적으로나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며 "한일과 대사관 및 국무부를 통해 매일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동맹국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미국의 관점이 있는가'란 질문에는 "보도자료에 언급된 내용을 넘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전면적 외교의 노력이나 미국 반응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12일 산케이는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일본의 조치에 관한 질문을 받고 '3개국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미국은 관계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언급에 그쳐 미국 정부의 견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날 NHK는 방일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신임 차관보가 방송사와 만나 "나는 중재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말한 내용을 보도하면서 미국이 현재로서 한일 사이에 적극 중재에 나서지 않되 대화를 통한 해결 방안을 찾도록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한국의 외교전에 대해 예의주시를 넘어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지난 11일 일본 산케이는 사설에서 "다만 한국에 의한 국제 여론 형성에는 경계가 필요하다"며 "일본이 반(反) 자유무역주의라 오해되지 않도록 세계에 대한 정보 발신을 빼놓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강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전한 내용에 대해 "비판은 전혀 맞지 않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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