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모스크바 외곽의 주코프스키 공항에서 화물기 하나가 수단의 수도 하르툼을 향해 이륙했다. 서류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의 RN트레이딩이란 기업이 하르툼에 보내는 진저브레드 쿠키 2만8000킬로그램이 실려 있다고 써있었다.
당시 화물기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않았다. 사실 문제의 화물(레인지로버 12대의 무게에 맞먹는다)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보내는 것이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케이터링 사업가이자 전세계의 독재자에게 무력을 제공하는 사설 용병부대의 창시자다.
프리고진은 오랫동안 그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바그너 그룹'이라 불리는 이 용병부대는 러시아 정부의 비공식 대외정책 도구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수행한 바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한 좌절을 겪으면서 바그너 부대의 중요성이 점차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프리고진은 그 대가로 천연자원의 사용 승인을 얻어내곤 했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그는 시리아, 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일대의 금, 다이아몬드, 원유, 목재 등의 천연자원을 채취하는 다국적 기업을 사실상 운영하고 있다.
이런 활동으로 말미암아 프리고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재를 받는 인물로 손꼽히게 됐다. 서방의 각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프리고진의 기업을 폐쇄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정도 압박을 받는 이라면 누구나 좋은 변호사를 필요로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출된 이메일과 문서부터 기업 기록, 수출신고필증, 인터뷰 등의 탐사를 통해 프리고진이 어떻게 세계 유수의 기업법 변호사들을 활용해 서방 정부들의 개입을 막으려 했는지를 밝혀냈다.
프리고진은 모스크바의 유명 로펌을 고용한 후, 일련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수행하는 용병 작전을 유지하는 데 활용했다. 유출된 문서에는 바그너 그룹이 어떻게 사업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으며, RN트레이딩을 비롯해 프리고진과 연관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영업을 계속해 온 페이퍼 컴퍼니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프리고진은 한편으로 런던과 워싱턴의 유명 변호사들을 고용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정교한 거짓 이야기를 꾸미고 자신의 활동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인들을 고소했다. 어떤 사례에서는 영국 정부가 변호인단에게 프리고진을 대변해 명예훼손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특별 허가를 내주기도 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래 서방 정부들은 푸틴과 가까운 인사들에 대대적인 제재를 내렸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서방의 제재 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케이스였다.
바그너 그룹의 용병이 등장한 모든 전투 현장에서 즉결처형, 고문, 강간, 언론인 살해 등 각종 인권 침해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1월 20일 미국 백악관은 바그너 그룹을 "초국적 범죄조직"으로 지정하고 추가적인 제재를 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2년 전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용병 무리가 한 시리아 남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영상이 공개된 일이 있었다. 용병 무리는 큰 해머로 남성을 때린 후 목을 잘랐고, 모종삽으로 팔을 절단한 후 불을 질렀으며 그러는 내내 웃고 있었다. 러시아의 독립 매체 노바야가제타가 바그너 그룹 소속이라고 확인한 이 용병 무리는 잘린 머리를 축구공처럼 찼다.
작년 11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탈영한 병사를 큰 해머로 살해하는 영상이 바그너 그룹과 연관된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왔다. 프리고진은 나중에 이 영상을 두고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영화 작품"이라고 농담을 하는 성명을 냈다.
프리고진의 숨겨진 기업망은 서방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 기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의 활동을 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유출된 문서는 또한 프리고진을 대변한 로펌들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몇몇 변호사들은 사법 체계 안에서는 모두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서방의 법정을 비대칭전쟁의 도구로 삼으려 한 조직폭력배를 변호하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프리고진은 199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팔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소련 시절 한 여성의 핸드백을 훔치기 위해 여성의 목에 칼을 겨눈 강도질에 가담해 징역을 산 적이 있었다. 2000년대가 되자 프리고진은 인기 레스토랑 여러 곳을 세웠고 새로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 푸틴의 관심을 얻었다. 푸틴은 그에게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외빈의 만찬 케이터링을 맡겼다.
프리고진의 회사 콩코드케이터링은 곧 러시아 정부의 여러 이권 계약을 따내기 시작했고 프리고진은 부와 함께 '푸틴의 쉐프'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사업을 케이터링에서 용병업으로 확장했다. 바그너 그룹은 2014년 설립됐고 곧 세계적인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
유엔 조사단은 바그너 용병 일당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떻게 고문, 실종, 즉결처형, 강간을 비롯한 인권 유린을 저질렀는지 기록했다. 2019년 6월, 바그너 용병의 훈련을 받은 수단의 민병대는 수도 하르툼에서 100명이 넘는 시위대를 살해했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댓글부대에 재정 지원을 한 혐의로 프리고진을 2018년에 기소했다.
서방 정부들은 프리고진과 연관돼 러시아의 군사 지원에 대한 대가로 채굴권을 받은 기업들에 초짐을 맞추기 시작했다.
2020년 4월, 미국 재무부는 시리아의 석유 채굴권을 받은 프리고진의 기업에 대한 2018년 제재에 더해 프리고진의 아프리카 기업 네트워크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수단에서 금광 사업을 하고 있던 메로에골드가 제재 대상이 됐다. 미국 정부는 메로에골드가 프리고진의 소유이자 통제를 받았으며 "수단에서 바그너 그룹 활동의 위장망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바그너 그룹을 "러시아 국방부의 대리 전력"이라고 지명했다.
유출된 이메일과 다른 기록에 따르면, 새로운 제재 조치가 도입되던 시기에 프리고진이 선임한 로펌 CLS는 비밀리에 프리고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아직 제재를 받지 않은 다른 새로운 법인과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2020년 2월, CLS 소속 변호사들은 RN트레이딩이란 러시아 법인과 일하기 시작했다. 주주나 이사진을 보면 프리고진과 연관이 없는 기업처럼 보이며 러시아 국외에서의 광산업과 원유추출업 등을 사업 종목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CLS의 수임료 청구 내역을 보면 이 회사는 프리고진의 콩코드 그룹 일원으로 등장한다.
RN트레이딩은 이미 제재 대상인 프리고진의 다른 기업들과 연결고리를 남겼다. 러시아의 수출 기록을 보면 RN트레이딩이 2020년 4월 30일 발송한 대량의 진저브레드 쿠키는 하르툼에 있는 메로에농축산회사로 보내졌는데 이 회사는 이미 제재 대상인 프리고진의 기업 메로에골드와 비슷한 법인명에 똑같은 주소를 갖고 있다.
문제의 화물에 정말로 진저브레드 쿠키만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작년 CNN은 수단 정부가 하르툼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화물기를 검색했는데 쿠키라는 라벨이 붙은 상자에서 금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 소재의 분쟁 분석 기관 C4ADS의 애널리스트 앨런 매거드는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사업에 조세 피난처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각기 다른 법인과 페이퍼 컴퍼니를 엮어 만든 다발"의 조합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제재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모든 종류의 불법행위자들은 이런 조치(페이퍼 컴퍼니, 바지 사장, 조세 피난처 등)를 총동원해서 글로벌 무역, 금융, 운송 체계를 계속 이용합니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바그너 그룹을 이끄는 러시아 군벌과 그의 변호사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독자 여러분이 급변하는 세상의 파도에 올라타도록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