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미국 뉴욕에서 시타델 증권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엔비디아의 중국 첨단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10월 이후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적용 받고 있다. 바이든 전 행정부 때 A100·H100 칩 수출이 금지되자, 엔비디아는 중국 전용으로 성능을 낮춘 A800·H800 칩을 내놓았으나 이 역시 수출이 금지됐다. 엔비디아는 성능을 낮춘 H20 칩을 다시 출시했으나 이마저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중국 수출이 금지됐다.
미중 패권 경쟁이 기술 경쟁, 특히 인공지능(AI) 경쟁으로 진행되자 미국이 엔비디아 AI 칩의 대중 수출을 계속해서 틀어막은 것이다. 미국의 AI 칩 수출 규제가 3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구차하게 성능을 낮춘 AI 칩을 받느니 차라리 중국 자체 AI 칩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기업이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캠브리콘 테크놀로지다. 캠브리콘은 지난 8월 27일 처음으로 한 주당 주가가 마오타이를 넘어서면 중국 황제주로 부상했다. 캠브리콘과 다른 중국 AI 칩 업체들을 살펴보자.
지난 10월 17일 캠브리콘은 3분기 매출이 17억2700만위안(약 345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332% 급증했다고 밝혔다. 순이익도 5억6700만위안(약 1134억원)으로 4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캠브리콘이 시장에 더 큰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을 전한 건 지난 8월 말이다. 당시 캠브리콘은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4347% 폭증한 28억8100만위안(약 576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후 단숨에 바이주 업체 마오타이를 뛰어넘어 중국 최고가 주식으로 등극했다.
캠브리콘은 엎치락 뒤치락 끝에 마오타이에게 다시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시총 100조원이 넘는 거대 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캠브리콘 주가는 1365.78위안, 시총은 5759억위안(약 115조원)에 달한다. 캠브리콘을 창업한 천텐스는 지분 28.4%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가치는 우리 돈으로 약 32조6600억원에 달한다.
캠브리콘에 대해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창업자인 천텐스, 천윈지 형제다. 둘 다 중국과학원 직속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영재반에 입학했으며 박사 학위 취득 후 중국과학원 컴퓨터연구소에서 일했다. 형 천윈지는 반도체를, 동생 천텐스는 지능 알고리즘을 연구하다가 2010년 무렵 의기투합해 각자의 연구를 결합한 'AI를 위한 칩'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지금이야 AI가 가장 인기있는 주제지만, 그때는 학계나 업계 모두 관심이 없을 때라 20만위안(약 4000만원)의 연구 프로젝트조차 따내지 못했다. 그들에게 AI 칩이라는 허무맹랑한 걸 포기하라고 조언한 사람도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형제는 연구를 이어가다가 2014년 마침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4년 3월 개최된 국제 최고 학술회의 ASPLOS에서 중국과학원 컴퓨터연구소의 객원연구원 올리비에 테맘(현 딥마인드 이사)과 함께 발표한 'DianNao: 소규모 고처리량 머신러닝 가속기'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것. 아시아 연구기관이 컴퓨터 시스템 및 고성능 컴퓨팅 분야 최정상급 국제학술대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을 꺾으면서 AI 연구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천텐스는 중국과학원을 그만두고 중국과학원 산하 투자회사의 투자를 받아 캠브리콘을 창업한다. 이 해 캠브리콘이 출시한 스마트폰 AI 칩 캠브리콘 1A는 지적재산권(IP) 라이선싱 형태로 화웨이의 기린 970 칩에 적용돼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10에 탑재됐다. 이후 화웨이는 캠브리콘의 최대 고객사가 됐다.
2016년은 엔비디아도 AI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 P100을 처음 내놨고, 개인용 AI 슈퍼컴퓨터인 'DGX-1'을 만들어 1호 기계를 젠슨 황이 오픈AI에 직접 선물하는 등 AI의 이정표가 된 해다.
2018년 화웨이가 자체 AI칩 어센드 910 개발에 나서고 기린 810 칩에 자체 개발한 다빈치 아키텍처를 탑재하면서 캠브리콘은 최대 고객이 최대 경쟁사로 바뀌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캠브리콘은 IP 라이선싱에서 AI 칩 자체 개발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시작한다.
2020년 캠브리콘은 중국판 나스닥인 커촹반(科創板·스타마켓)에 상장하면서 중국 AI 칩 1호 상장사가 됐다. 상장 당일 주가는 288% 급등했고 시총 1000억위안을 돌파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포함되면서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와의 협력을 끝내야 했다.
캠브리콘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출이 7억위안에 머무는 등 부진했으나 2024년 들어 시장의 주목을 받는다. 이 해 엔비디아의 A100 칩을 겨냥한 'MLU590'을 내놓으면서 중국의 엔비디아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MLU590의 전반적인 성능은 A100의 약 80%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AI 붐이 본격화되면서 엔비디아의 H100 칩 가격이 4만달러까지 급등하고 미국의 대중국 AI 칩 수출 규제로 중국 자체 AI 칩 시장이 확대되면서 캠브리콘에게도 기회가 도래한다.
올해 1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으로 개발한 고성능 LLM(대형언어모델) 'R1'을 출시한 것도 캠브리콘에게는 큰 전환점이다. 12일 캠브리콘의 시총은 5759억위안이며 주가수익비율(PER)은 269배로 엔비디아의 55배를 크게 넘어선다. 캠브리콘 PER가 엔비디아보다 높은 이유는 엔비디아는 미국 증시에서 AMD, 인텔 등 경쟁사가 있지만, 캠브리콘은 중국 증시에 상장된 유일한 AI 칩 업체인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조만간 바뀔 예정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AI 칩 업체들은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준비에 나섰다. 무어스레드와 메타엑스는 이미 상장 심사를 통과했고 비런과기와 엔플레임 등이 상장 지도를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 국내파가 창업한 캠브리콘과 달리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고위 경영진 출신이 창업해, 경영진의 기술력도 충분하고 글로벌 경험도 많다. 무어스레드는 엔비디아, 엔플레임·메타엑스는 AMD, 비런과기는 화웨이와 AMD 출신이 각각 창업했다.
매출과 순이익은 2020년 일찌감치 커촹반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늘린 캠브리콘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올해 상반기 캠브리콘 매출은 28억8100만위안으로 무어스레드(7억200만위안), 메타엑스(3억2000만위안)을 큰 폭 넘어섰다.
순이익도 캠브리콘은 10억3800만위안에 달하는 반면 무어스레드(-2억7100만위안), 메타엑스(-2억3300만위안)는 순손실로 대다수 AI 칩 업체들아 적자 상태다.
이런 가운데 캠브리콘뿐 아니라 중국 AI 칩 업체들이 맞닥트린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 제조 공정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중국 AI 칩 업체들은 ①대만 TSMC나 삼성전자에 반도체 위탁 생산주문을 할 수 없고 ②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용할 수 없으며 ③글로벌 선두기업 시놉시스, 케이던스 등의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중국 AI 칩 업체들은 중국 파운드리업체 SMIC에서 생산할 수 밖에 없는데, SMIC 공정은 7나노(nm·1나노=10억분의 1m) 수준에 머물고 있다. 초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회로 선폭이 작아지고 전력 소비가 줄며 성능이 향상되는데, 4나노 또는 5나노 공정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중국 AI 칩의 연산성능도 엔비디아의 첨단 칩에 한참 못 미친다. 엔비디아가 2024년 발표한 B100 칩의 연산성능이 INT8(정수, 8비트) 기준 3500 TOPS(초당 1조회 연산), 2020년 발표한 A100 칩도 624 TOPS에 달한다. 반면,캠브리콘의 MLU590 칩은 512 TOPS, 화웨이의 어센드910C 칩은 800 TOPS, 무어스레드의 MTT S4000 칩은 200 TOPS, 메타엑스의 C500 칩은 560 TOPS에 그친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중국 반도체 업계에게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가져다 줬다. 엔비디아의 중국 AI 칩 시장 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진 사실이 이를 잘 드러낸다. 젠슨 황은 거대한 시장 공백이 중국 AI 칩 업체들에게 엔비디아를 추격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는데, 중국 AI 칩 업체들이 엔비디아를 어디까지 추격할 수 있을 지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