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새 지도부, 전처럼 나쁠지도"…'가랑비' 만난 트럼프 곤혹

윤세미 기자
2026.03.04 11:22

[미·이스라엘, 이란 공격]

압도적 무력으로 단기간에 이란의 굴복을 얻어내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도박'이 장기전으로 지속될 수 있단 전망이 커지고 있다.

최고지도자 사망 이후 이란은 항전 의지를 불태우며 세계 경제를 인질로 소모전에 돌입한 상황.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에 등장할 차기 지도부가 전과 다름없는 대미 강경파가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려은 이란 전쟁의 목표와 기간에 대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BBNews=뉴스1

트럼프 "지도자 후보들, 공습에 사망" 파트너 찾기 어렵단 반증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이란 전쟁 최악의 시나리오를 묻자 "최악의 경우는 우리가 이렇게 (전쟁을) 했는데, 이전 인물만큼이나 나쁜 누군가가 다음 권력을 잡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메네이 사망이 곧 친미정권 수립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보다 온건한 지도자가 등장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꼽았던 유력 후보들이 공습으로 사망했으며, 차순위 그룹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공습으로 이란 수뇌부가 대거 제거되면서 미국과 대화할 만한 합리적인 협상 파트너를 찾기 어렵단 사실을 시인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이란의 유력한 새 최고지도자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사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거론된다. 한 이란 매체는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최고지도자를 뽑는 전문가 위원회는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공표하고 싶어 하지만 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발표를 망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의 발리 나스르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모즈타바는 오랫동안 후보로 거론됐지만 지난 2년은 사실상 후보군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면서 "그가 후계자가 된다면 이란 내부에서 혁명수비대 중심의 강경 노선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로마=AP/뉴시스]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란 연대 시위대가 미국에 망명 중인 이란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라비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03.04. /사진=민경찬
이란 "살아남는게 승리"…美, 쿠르드족 접촉

객관적 전력으론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다. 이란은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상대의 전쟁비용을 늘리는 소모전, 이른바 '가랑비'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인근 산유국의 에너지 시설 타격을 통해 글로벌 유가를 폭등시키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인 경제 안정을 뒤흔들겠다는 계산이다. 또 이란은 저렴한 드론으로 걸프국들의 값비싼 요격 미사일을 고갈시키려 하고 있다.

레자 탈라에이 니크 이란 국방부 대변인은 이란 국영 통신 IRNA에 "지금까지 최첨단 무기는 사용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적이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랫동안 저항하고 공세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지속적인 역량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앞서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며 장기전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미국 내 여론이 악화할 경우 전쟁을 계속할 정치적 동력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담당 이사 알리 바에즈 연구원은 "이란은 어떤 대가를 치르건,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건 상관없이 고통을 최대한 확산시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서 물러나도록 충분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에겐 승리 후 아무것도 남는 게 없더라도 살아남는 것 자체가 곧 승리"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과 전후 이란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두기보다 실시간으로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다. 전황을 지켜보며 참모들과 기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던지고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방향을 가늠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이란 정권에 반대하는 역내 무장단체 및 소수민족 세력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통화했고 다른 단체 지도자들과도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이라크와 이란 국경엔 상당한 규모의 무장 세력이 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이 이란 서부 기지를 공습한 건 쿠르드 세력이 이란으로 진입할 길을 터주기 위한 것 아니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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