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격화하면서 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주요국의 경기를 둔화시키고,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경제 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중동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봤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군사 충돌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이 가스전 등 이란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공격하자,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며 긴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도 약 5000명 규모의 해병대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배치하며 추가 군사 작전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안도 함께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석유 결제 통화인 달러 강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른바 '페트로달러(원유 거래·결제에서 달러가 중심이 되는 구조)의 역설'이다. 유가 상승은 통상 미국 경제에도 인플레이션 부담을 주는 악재지만, 동시에 석유 거래의 기축통화인 달러 수요를 끌어올려 달러 가치를 강화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즉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수록 달러는 오히려 강해지는 구조다. 이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굳어진 페트로달러 체제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산유국이 석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에 재투자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해 온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 상승은 에너지 수입국의 부담을 키우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동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겹칠 경우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공급망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석유 확보 경쟁이 촉발되면서 결제 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더욱 강한 지지를 받게 된다. 이번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위기가 달러 강세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달러 강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19달러 수준까지 올랐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했던 배럴당 60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약 2배 상승한 것이다. 유가가 이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주요 투자은행들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율이 1~2%포인트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너지는 제조업과 운송, 물류 등 대부분의 산업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로, 유가 상승은 곧바로 생산 비용과 물류 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광범위한 물가 상승 압력을 만들어낸다.
비료와 식량, 운송 시장에서도 전쟁의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화학제품과 비료 교역의 약 20~30%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 통로다.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해상 운임과 보험료가 급등했고, 비료 가격 역시 전쟁 이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뛰었다. 작물 생산에 필수적인 질소 비료 가격은 전쟁 이전보다 40% 이상 올랐으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우회하는 상선들이 늘면서 해상 운송 보험료도 최대 10배가량 상승했다.
비료 가격 상승은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운송비와 보험료 급등은 제품 가격 전반에 반영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점차 구조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재편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동발 충격이 더해지면서 이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복합적 구조 요인이 중첩된 결과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중동 전쟁의 여파로 달러 강세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경우 그 영향은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경기 둔화가 예상된다. 연준은 중동 전쟁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3.50~3.75% 수준에서 동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중동 상황에 따라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며 추가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당초 연내 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중동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금리 동결과 인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딜레마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다 경기를 꺾는 '정책 실패'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오건영 신한금융그룹 신한 프리미어패스파인더 단장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고유가·고물가·강달러의 삼중 압력이 형성되면서 미국 경제 성장 둔화가 우려된다"며 "당장 현실화 가능성은 적지만 물가와 실물 경제의 급격한 둔화가 금융시스템의 취약한 고리를 건드릴 경우 예상보다 큰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받을 충격은 더 크다. 달러 강세는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 하락과 수입 물가 상승을 동시에 초래한다. 원유와 곡물, 비료 등 주요 원자재가 대부분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이 가중된다. 특히 에너지와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취약국 주민들에게는 심각한 생계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채 부담도 문제다.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 달러 표시 외채 비중이 높은 신흥국과 개도국의 부채 상환 부담은 빠르게 커진다.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는 같은 달러 부채를 갚기 위해 더 많은 자국 통화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 차입 비용마저 늘어나 재정 압박이 한층 심화된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의 약 60%가 이미 심각한 부채 위험에 처해 있거나 그 경계선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추가적인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취약국가에서는 외채 상환 능력이 약화되면서 재정 또는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 비율이 높고 채무 구조조정에 의존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등이 대표적이다.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달러 강세,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경우 이들 국가에서는 실물 경제와 금융 불안이 동시에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