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전쟁에 비협조적이라고 판단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으로부터 미군 주둔 병력을 빼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보상과 불이익을 나누는 거래적 외교가 노골화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불만을 표명한 한국·일본 등 아시아 동맹에까지 보복성 조치를 검토할지 관심이 쏠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토 회원국 내 미군 재배치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비협조적이라고 판단한 나토 회원국에서 병력을 빼내 상대적으로 협조적이었던 회원국으로 이동시키는 내용이다. 미국은 현재 유럽 전역에 약 8만4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군사 훈련이나 순환 배치에 따라 일부 변동이 있다.
유럽 내 미군 기지는 전 세계 미군 작전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며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신속한 지원과 군사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 주둔 미군으로 건물·장비·물자 구매, 현지 인력 고용 같은 경제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군 재배치는 나토 탈퇴까지 거론했던 기존 위협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70년 넘게 이어진 안보 동맹의 균열이 실질적인 병력 재배치를 논의할 만큼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이란 전쟁에서 미국 편에서 적극 나서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뒤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리가 필요할 때 나토는 없었고 다음에도 그럴 것"이라며 거듭 실망을 드러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나토는 지난 6주 동안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국방비를 지원받아 왔는데도 미국 국민을 외면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소식통들은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미군 재배치 외에도 비협조 국가 내 미군 기지 폐쇄 등의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불이익을 받을 나라가 어디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스페인과 독일이 거론된다. 스페인은 미국의 이란 공습을 정면 비판하며 미군 항공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제한했고, 독일은 정부 고위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을 비판했다. 이탈리아는 미군의 시칠리아 공군기지 사용을 일시적으로 제한했으며, 프랑스는 특정 조건 하에서만 자국 기지 사용을 허용했다.
이들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5개국은 경제규모가 EU 내 큰 편이라 영향력도 센 이른바 빅5 국가들이다.
반면 폴란드,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그리스 등 비교적 경제력이 EU 내부에서 작은 국가들은 우대할 수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이 높으며, 호르무즈 해협 감시를 위한 국제 연합군 창설을 지지하겠다고 가장 먼저 나선 나라들이다. 루마니아의 경우 전쟁 발발 후 미 공군의 기지 사용을 신속하게 승인했다.
공교롭게 이들은 중·동부 유럽국가여서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때문에 독일과 스페인 등 후방 거점의 병력을 러시아 접경지인 동유럽으로 전진 배치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를 자극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어서다.
또 독일에서의 병력 철수는 미군의 글로벌 작전 수행 능력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미군 유럽 사령부(USEUCOM)와 아프리카 사령부(USAFRICOM)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하는 등 독일은 유럽 내 미군 핵심 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