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투자의 민주화'...퇴직연금을 사모펀드에 개방하면?

김하늬 기자
2026.06.07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개인 퇴직연금(이하 401K)에 대체투자 편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의 논쟁을 촉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30일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퇴직연금 계좌 확대 행정명령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계좌 접근성을 확대하는 명령에 서명했다/AFPBBNews=뉴스1

대상은 사모펀드·사모 대출·부동산·원자재·디지털 자산 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투자 기회의 민주화(Democratizing Access to Alternative Assets)"라고 부른다. 기관투자자에게 주로 열려 있던 비상장 자산 투자 기회를 일반 근로자에게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시점이 미묘하다. 미국 사모펀드 업계가 고금리, 엑시트 지연, 낮은 현금분배율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401K라는 거대한 장기 자금 풀이 새 유동성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401K 자금이 곧바로 사모펀드의 부실 자산을 사주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모 시장에 새로운 수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월가의 승리"라고 표현하며, 사모펀드 업계의 최대 로비 단체인 미국투자위원회(AIC) 등 여러 로비 단체들이 대체투자 상품 확대를 위해 수년간 공들여온 점을 짚었다.

이번 논쟁은 특정 금융상품의 허용 여부를 넘어선다. 미국 가계의 핵심 은퇴자산이 비상장 자본시장과 연결될 때 기대수익과 위험이 어떻게 재배분되는지에 관한 문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401K 시장 개방의 배경과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짚어봤다.

10조 달러 넘는 개인 퇴직연금 개방..."사모펀드, 코인, 부동산 등도 투자 가능"

401K는 미국의 대표적인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제도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가입자가 펀드 등을 선택해 노후자금을 운용한다. 미국 투자회사협회(ICI)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 401K 시장의 총자산 규모는 약 10조1000억 달러, 가입자는 7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직장인 퇴직연금을 의미하는 401(k) 판넬//AFPBBNews=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8월7일 확정기여형 연금 내 대체자산 접근성을 넓히는 내용의 이른바 '401K 투자자를 위한 대체자산 접근 민주화' 행정명령(EO 14330)에 서명했다. 이에 발맞춰 미국 노동부(DOL)는 2026년 3월 30일, 수탁자가 퇴직연금 옵션에 대체자산을 편입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절차 중심의 세이프 하버(Safe Harbor, 면책) 규칙안을 입법 예고했다. 세이프 하버는 수탁자가 일정 절차를 지킬 경우, 소송면책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법적 리스크를 낮춰 편입을 사실상 장려하는 구조다.

규칙안은 수탁자가 △성과 △수수료 △복잡성 △유동성 △성과 벤치마크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노동부가 연방관보에 공개한 설명문에 따르면 401K의 대체투자가 시행될 경우, 매년 대체투자가 포함된 타깃데이트펀드로 약 1780억 달러가 새롭게 유입되고, 450만 명의 퇴직연금 가입자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계획은 약 72만1000개의 은퇴연금 플랜, 약 1억1800만 명의 근로자, 8조80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플랜에 적용될 수 있다. 노동부는 6월1일까지 업계 의견을 받고 연말까지 규칙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행정명령에 따라 확정기여형 플랜 참가자의 대체자산 접근을 '촉진하는 방법' 검토에 돌입했다. 미 의회에선 공화당 하원의원 트로이 다우닝이 행정명령을 법제화하는 '은퇴 투자선택법(Retirement Investment Choice Act)'을 발의한 상태다.

미 정치전문지 악시오스는 트럼프의 401K 대체자산 개방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 및 글로벌 사모펀드 업계에 사실상 '성배(holy grail)'라고 표현했다. 연기금이나 대학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성장한 사모펀드가 개인 퇴직연금이라는 장기·반복성 자금에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왜 지금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401K 개방 추진이 1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정책 흐름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트럼프 1기 노동부는 2020년 401K플랜의 자산 배분형 펀드 안에 사모펀드를 일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일반적인 수탁자가 사모펀드의 복잡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며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2025년 행정명령은 바이든식 신중론을 되돌리고, 다시 401K 내 대체투자 확대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경제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를 지키고 있는 황소가 질주하고 있다. 경제 성장 기대와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2025년 을사년(乙巳年)에는 힘찬 황소처럼 활기찬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다만 정책적 연속성만으로 이번 움직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모펀드 업계의 상황도 달라졌다. 때문에 사모펀드 업계가 최근 수년간 유동성 어려움을 겪어온 점과 연결 지어 비판적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01K 편입 논란이 예민한 이유는 사모펀드 업계 내부의 회수 압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기존 기관투자자에게 현금을 충분히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 퇴직연금이라는 새 자금 통로가 열리는 것이 단순한 투자 기회 확대인지, 아니면 업계의 유동성 압박을 완화하는 장치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모펀드 시장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회복 조짐을 보인다. 2025년에는 건당 25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거래를 의미하는 '초대형 거래(Mega Deal)'이 성사됐고, 블랙스톤·KKR·아폴로 같은 대형 운용사는 자금 조달과 실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이들은 리파이낸싱, 세컨더리 거래(지분이나 비상장자산을 다른 투자자에게 되파는 거래), 컨티뉴에이션(우량 자산을 새 펀드로 이전해 더 오래 보유하는 방식)펀드 등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시장 전체가 고르게 회복된 것은 아니다. 중소형 운용사와 2020~2022년 고평가 국면에서 투자한 펀드들은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는 2월 출간한 '사모펀드: 시야는 더 선명해졌지만, 지형은 더 험난해졌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소수의 대형 사모펀드를 제외한 미국 사모 시장의 전반적인 지표는 저점 국면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맥킨지는 지난해 5억 달러 미만 규모의 중소형 펀드가 전체 투자 유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년 전 17%에서 13%로 감소했고, 50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메가 펀드들 비중만 확대된 점을 짚었다. 신규로 설정된 펀드의 수 자체도 최근 10년 내 최소 규모다. 자금 여력이 고갈된 중소형 운용사들이 생존을 위해 대형사로 흡수되면서, 규모 기준 상위 100대 일반파트너(GP)의 전략적 인수·합병 활동 규모는 2024년 약 180억 달러에서 2025년 340억 달러 이상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중소형 운용사와 2020~2022년 고평가 국면에서 투자된 특정 빈티지 펀드를 중심으로 자본 고갈 신호가 포착된다는 게 맥킨지의 분석이다.

베인앤드드컴퍼니에 따르면 2025년 사모펀드의 투자 회수 가치(Exit Value) 자체는 전년 대비 44% 증가한 9040억 달러를 기록했고, 세컨더리 거래 규모 역시 24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8%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운용사 간의 지분 거래나 장부 재평가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2개월간 전체 사모펀드의 운용자산(AUM) 대비 실제 투자자 현금 배분액(DPI) 비율은 단 6%에 불과했다. 이는 과거 2015~2019년의 역사적 평균치인 16%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투자기업의 보유 기간은 길어졌고 포트폴리오 기업의 상당 부분이 미실현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사모펀드가 보유한 미국 및 글로벌 미매각 자산이 약 3조8000억 달러, 약 3만2000개 포트폴리오로 추산한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형 사모펀드는 엑시트 지연과 낮은 DPI가 곧바로 후속 펀드 조성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더 해지고 있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401K 시장은 사모펀드 업계에 매력적인 자금원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401K 자금이 기존 미매각 자산의 직접적인 출구가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사모 자산 상품에 대한 신규 수요를 만들고, 사모 시장 전반의 자금 조달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찬성론..."상장시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찬성론자들은 401K 가입자가 상장주식과 채권에만 머무르면 충분한 투자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주 정부 공적연금(DB)이나 대형 재단 등 초대형 기관투자자만 누려왔던' 비유동성 프리미엄(자금을 장기간 회수하기 어려운 대신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수익 보상)을 일반 근로자도 손쉽게 접근하도록 문턱을 낮춘다는 의미에서 '투자의 민주화'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는 2월 출간한 '사모펀드: 시야는 더 선명해졌지만, 지형은 더 험난해졌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소수의 대형 사모펀드를 제외한 미국 사모 시장의 전반적인 지표는 저점 국면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사진=맥킨지 그룹 홈페이지

401K의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가 주로 약 4000여 개 상장사와 채권 중심인데, 최근 유망 기업들이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며 성장하는 경향이 짙어진 만큼 기업의 고수익 구간에서 401K만 배제될 수 있다는 논리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2025년 주주 서한에서 "연기금은 전통적으로 401K보다 연간 약 0.5%씩 더 높은 성과를 내는데, 이 이유 중 하나는 사모 자산 편입 여부의 차이"라고 말했다.

시황적인 측면에서도 지금이 장기 진입의 적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수년간 진행된 급격한 금리 인상과 기술주 중심의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조정 단계를 거치면서, 사모 시장 자산들의 가격 거품이 충분히 제거되었다는 해석이다. 이 시점에서 세컨더리 펀드나 사모 대출, 인프라 자산, 부실채권 등을 다루는 디스트레스드(Distressed) 전략 자산들을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 장기 분산 편입한다면, 향후 금리 안정기 진입 시 높은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구상이다.

방식론은 개별 근로자가 직접 사모펀드를 고르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알아서 조절해 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나 글로벌 자산배분형 펀드 내에 대체자산의 편입 한도를 제한적(예: 5~10%)으로 허용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이 구조라면 개인 가입자가 직접 특정 바이아웃 펀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 운용사가 유동성, 밸류에이션, 분산, 환매 대응을 관리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반대론..."트럼프의 월가 친구들에게 또 다른 현금 더미를 주는 것"

반대론의 핵심은 단순하다. 일반 근로자의 은퇴 자금이 사모 시장 위험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은 이번 조치가 사모펀드 업계에 새로운 유동성 풀을 제공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워런 의원은 "트럼프 경제 속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미국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은퇴 저축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이유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은 트럼프의 월가 친구들이 가지고 놀 또 다른 현금 더미를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26년 1월 21일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블랙록 회장이자 WEF 공동의장인 래리 핑크와 악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자산운용업계 인터뷰를 통해 "401K 시장의 개방은 표면적으로 개인 투자자에게 기관투자자의 전유물이던 대체자산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2만 9000개에 달하는 미매각 자산에 가두어진 사모펀드 운용사(GP)들에게 일반 근로자의 은퇴 자금을 통해 신규 출구를 열어주는 위험한 경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모 자산은 높은 기대수익을 내세우지만, 그만큼 구조가 복잡하다. 매일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장부상 평가가치와 실제 매각가격이 다를 수 있다. 수수료 체계도 복잡하다. 운용보수와 성과보수에 더해 펀드오브펀드, 플랫폼, TDF 비용이 겹칠 수도 있다.

성과 편차도 크다. 사모펀드 평균 수익률이 높다고 해서 401K 가입자가 평균 이상의 펀드에 접근한다는 보장은 없다. 대형 기관투자자는 오랜 관계와 대규모 출자, 정보 접근성을 바탕으로 우수 운용사에 접근한다. 반면 일반 가입자는 자신이 어떤 기초자산에 노출되는지, 총수수료가 얼마인지, 유동성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기관투자자는 전문 인력, 협상력, 실사 능력, 장기 자금 구조로 되어 있다. 401K 가입자는 그렇지 않다. 같은 자산군에 투자하더라도 조건과 접근권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진다는 논리다.

모닝스타 피치북의 미국 에버그린 펀드 지수(계속 자금을 모집·운용·환매하는 개방형 사모시장 펀드의 성과를 추적하는 벤치마크 지수)에 따르면 1월 31일에 마감한 최근 3년의 최고 성과 사모펀드의 수익률은 거의 25%였던 반면, 최악의 성과를 낸 펀드는 거의 48%의 손실을 기록했다. 직접대출 성과는 같은 기간 3%에서 14% 수익률 범위에 있었고, 또 다른 사모 대출 범주는 거의 28% 수익에서 3% 손실까지 편차가 있었다. 피치북의 힐러리 위크 분석가는 "당신의 401K에 최고 펀드가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라며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구조적 위험 요인...유동성 미스매치와 수수료 누적

제도 설계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유동성이 꼽힌다.

401K 가입자는 은퇴, 이직, 긴급 인출, 포트폴리오 조정 등 수시로 자금을 이동하거나 현금화하는 수요가 있다. 반면 사모펀드와 사모 대출은 자금이 수년간 묶이는 대표적인 비유동성 자산이 대부분이다.

TDF 안에 간접 편입하면 개별 가입자의 인출 요청이 곧바로 사모 자산 매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TDF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과 신규 유입액이 완충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시장 전반의 스트레스 국면이나 경기 침체기가 도래해 대규모 환매 요구가 집중될 경우 운용사는 심각한 자산 왜곡에 직면할 수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28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250달러 지폐 시안을 들어 보이고 있다.2026.05.2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운용사가 유동성이 높은 공모자산을 우선 매각해 환매에 대응할 경우, 펀드 안에서 사모 자산 비중이 의도치 않게 높아진다. 남은 가입자들이 더 비유동적인 포트폴리오를 떠안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악의 경우 사모 자산 지분을 세컨더리 시장에서 조기 처분해야 하는데, 자산운용업계 통계에 따르면 시장 경색 국면에서 사모펀드 지분의 세컨더리 할인율(다른 투자자에 매각할 때 장부가 대비 싸게 거래되는 비율)은 순자산가치(NAV·투자자산의 평가가치에서 부채와 비용을 뺀 순가치) 대비 바이아웃 펀드가 10%에서 15%, 벤처캐피털 펀드는 20%에서 30% 이상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용은 결국 펀드 수익률과 가입자 계좌 잔액에 반영된다.

펀드오브펀드와 중간 운용 플랫폼을 거치며 누적되는 다층적 수수료는 장기 은퇴자산의 복리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할인 매각 비용과 유동성 확보 비용, 자산 평가의 불확실성은 운용 과정에서 흡수되지 않고 가입자의 최종 퇴직 잔액 감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 회계감사원(GAO)도 401K 타깃데이트펀드 관련 보고서에서 작아 보이는 수수료 차이도 장기 은퇴 저축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변수가 있다. 2024년 연방대법원이 행정기관 규정에 대한 '셰브론(Chevron)' 존중 원칙을 폐기함에 따라, 노동부가 세이프 하버 규칙을 확정해도 법원이 이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탁자가 노동부가 제시한 절차를 따랐다는 사정은 방어 논거가 될 수 있지만, 손실 발생 시 법원이 이를 곧바로 면책 사유로 인정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401K의 대체자산 편입을 둘러싼 더 큰 소송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의 시사점

미국의 401K 논쟁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역시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5년 말 기준 501조4000억 원에 달하며, 디폴트 옵션과 TDF 활용 확대로 장기 운용 구조로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미국식 개방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도 구조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장지연 노사정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 발표'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2026.02.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

미국의 실험에서 한국이 주목할 지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탁자 책임이다. 퇴직연금 상품에 비상장·비유동성 자산을 넣을 경우 손실 책임과 설명 의무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여부와 법적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소하는 지가 관건이다.

둘째, 평가와 공시 문제다. 매일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비상장 자산을 퇴직연금 계좌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가입자에게 설명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셋째, 유동성과 수수료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언제든 직장 이동, 은퇴, 자산 변경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비유동성 자산을 편입하려면 환매 대응 장치와 총비용 공시가 먼저 정교해져야 한다.

결국, 401K 대체투자 논쟁의 본질은 '투자 기회 확대'와 '위험 이전' 사이의 경계다. 사모 자산을 일부 편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근로자의 은퇴자산이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전문 운용사가 관리하니 괜찮다"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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