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국' 착각 [PADO]

PADO 국제시사문예지
2026.06.13 06:00
[편집자주] 최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가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기술 및 경제 네트워크에 합류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중국쪽에 줄서는 것이 한국에 좋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한 것입니다. 외교관의 부드러운 표현과 달리 학자의 표현은 좀 더 직설적일 수 있습니다. 포린어페어스의 5월 25일자 기고문에서 터프츠대 교수이자 보수적인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 비상임 선임연구원인 마이클 베클리는 "중견국들끼리 뭘 하려하지 말고 미국쪽에 줄 서라"고 말합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약할 때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같은 어중간한 중견국 외교가 가능한 것이지 미중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는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있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비판합니다. 싸움하는 두 세력의 중간에 '자유로운 시장'이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자칭 '중견국(middle power)'들이 있는데, 지금같은 시대에 경쟁 세력 사이에는 오직 '지뢰밭'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향해 '줄 잘 서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만, 우리의 선택지 중에 가장 좋은 것, 또는 가장 덜 나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 기고문은 우리의 고심에 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PADO와 함께 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5월 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천단공원을 함께 걷고 있다. /사진=AP/뉴시스

1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에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들은 더 이상 각자 따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식탁에 앉아 있지 않다면 ... 우리는 메뉴 위에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했다. 각국 수도와 국제회의 현장에서 중견국들은 갑작스럽게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싱크탱크 보고서와 신문 칼럼들은 인도를 핵심 '스윙 스테이트'로 묘사하고, 브라질·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를 성공적인 헤징 전략의 모델로 내세우며, 호주·캐나다·유럽·일본·한국에는 더 긴밀히 공조하고 미국 의존도를 낮추라고 촉구한다. 새로운 용어들도 뒤따랐다.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다중정렬(multialignment), 미니래터럴리즘(minilateralism), 가변적 기하(variable geometry) 같은 표현들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이러한 움직임이 다극화 세계의 도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은 서방 중심 질서의 대안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위계질서는 중간 규모 국가들이 협상하고 중재하며 강대국들을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보다 느슨한 체제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불안을 힘으로 착각하고 있다. 중견국들이 강해졌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취약해졌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많은 중견국들이 번영할 수 있게 했던 조건들은 지금 무너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들 국가는 미국 패권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팽창하는 글로벌경제를 활용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강대국들과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은 채 교역할 수 있었다. 스스로 규모를 갖추지 않고도 규모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계는 사라지고 있다. 성장률은 둔화했고, 세계화는 '초크포인트'를 둘러싼 경쟁으로 변했으며, 강대국들은 더욱 약탈적으로 변했다. 미국은 점점 더 자신의 지배력을 이용해 양보를 강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보조금과 수출 과잉을 통해 다른 국가들의 산업기반을 약화시키고, 부채와 인프라로 엮어 의존성을 심화시키며, 군사적 괴롭힘과 경제 제재를 통해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그 결과는 중견국들이 부상하는 평평한 세계가 아니라, 두 초강대국이 타국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굴복시킬 수 있는 수단을 더욱 많이 갖게 된, 한층 가혹한 세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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