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스포트라이트가 인공지능(AI)에서 로봇으로 옮겨지고 있다. AI 열풍을 이을 다음 10년의 메가트렌드는 로봇이다."
최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만난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진단이다. 지난 2년 동안 엔비디아를 필두로 반도체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던 월가가 이제 'AI 두뇌'를 탑재하고 움직일 휴머노이드 로봇(인간형 로봇) 산업을 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는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당초 2035년 60억달러(약 9조2000억원) 수준으로 예측했던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를 380억달러(약 58조4000억원)로 수정했다. 바클레이즈는 좀더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로봇 시장이 2035년 2000억달러(307조4000억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바클레이즈의 테모스 피오타키스 글로벌 외환·신흥시장 매크로 전략총괄은 머니투데이와 만나 "스마트폰이나 TV 스트리밍 같은 혁신 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시장은 향후 창출될 막대한 부를 보지 못하고 과소평가했다"며 "지금 금융시장 역시 로봇 산업이 가져올 자산 가치 상승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이 생산 비용을 낮추고 공급량을 폭발적으로 늘려 유례없는 수준의 새로운 소득과 부를 창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월가가 휴머노이드 로봇 투자를 한철 테마가 아니라 구조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보는 것은 수십, 수백억원을 들여 공장을 뜯어고치지 않아도 로봇을 투입할 수 있는 경제성 때문이다. 모간스탠리 분석팀은 최신 보고서 '구체화된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부상'에서 "작업대, 이동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생산라인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기능할 수 있는 기계는 과거의 자동화 제약 조건으로부터 확연한 혁신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로봇의 심장으로 불리는 액추에이터나 감속기 같은 핵심부품의 제조원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로봇산업의 타임라인을 앞당기는 동력으로 지목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의 부품 원가는 최근 1~2년 사이 15만~25만달러에서 8만~15만달러로 줄었다.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핵심부품 공급망이 급격하게 안정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재클린 두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 에퀴티 전략가는 "최근 원가 하락은 과거 연간 15~20%의 비용 절감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월가의 자금이 휴머노이드 로봇에만 머물지 않고 로봇의 뇌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핵심부품 센서, 당장 돈을 벌어들이는 실전형 물류 로봇 등으로 다양한 경로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범용 로봇 AI 모델 개발사 스킬드AI가 14억달러를 조달했고 산업용 휴머노이드 앱트로닉은 5억2000만달러, 공장용 피지컬 AI 기업 마인드 로보틱스는 5억달러를 끌어모았다. 창고 자동화 기업 마이트라도 1억2000만달러를 유치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로봇의 공장 실전 배치가 당초 예상보다 1년 이상 앞당겨져 내년부터는 상용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고령화로 치명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서 로봇이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바클레이즈의 테마틱 FICC 리서치 총괄 조르니차 토도로바는 "고령화 진행으로 향후 3700만명의 노동력 부족 우려가 제기된 중국에선 2035년까지 최대 2400만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현장에 배치해 전체 노동 인구의 4%에 해당하는 인력 감소를 상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 산업계에서도 로봇 도입을 대안으로 보는 시각이 빠르게 늘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크리스천 켈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의 로봇이 미리 입력된 명령어로만 움직이는 쇳덩이였다면 지금 월가가 베팅하는 로봇은 뇌(AI 모델)와 몸(하드웨어)이 결합한 '생각하는 일꾼'"이라며 "가격은 낮아지고 지능은 높아지는 로봇 생태계로 월가의 거대한 돈줄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