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 전함 건조 사업 계획을 예산 초과, 일정 지연 등의 이유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독일 방위산업 조달 역사상 최대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럽의 방위·안보를 주도하겠다던 독일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23일(현지시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독일 고위 관리들이 이날 업계 관계자와 의원들에게 F126 호위함 6척 건조 계획 철회 결정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독일 당국은 F126 호위함 6척 건조 대신 더 작은 규모의 메코(Meko) A-200 호위함 8척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F126 호위함 건조 계획은 2020년 독일 정부가 네덜란드 조선업체 다멘을 주계약자로 선정해 추진한 차세대 다목적 함정 구축 사업으로, 총 6척(최초 4척 건조 계약 후 2척 추가) 건조를 목표로 세웠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북대서양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략과도 맞물린 사업이었다.
하지만 계약 체결 이후 소프트웨어 결함, 독일 조달청과 다멘 간 소통 부재 등으로 지속적인 공정 지연과 예산 초과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사업을 살릴 기회도 있었다. 독일 정부와 다멘은 갈등이 깊어지자 2025년 주계약업체 지위를 다른 곳으로 넘기는 것에 합의했다. 지난 3월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이 사업 참여 의사를 내비쳤고, 독일 정부는 올여름 의회의 승인을 받아 라인메탈과의 계약을 확정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라인메탈이 사업승계 조건으로 독일 정부에 128억유로(약 22조3366억원)를 요구했다. 당초 F126 건조 사업 규모는 86억유로였으나, 다멘과 갈등으로 사업 진행이 지연되는 사이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또 주계약업체 변경 등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라인메탈이 기존보다 40억유로 이상 늘어난 예산을 요구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정부는 예상치 못한 금액이 적힌 라인메탈의 청구서에 당황했고, 이는 결국 사업 취소로 이어졌다"며 "이번 사업 철회는 독일 정부는 물론 라인메탈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짚었다. FT에 따르면 라인메탈 내부에서 F126 사업 참여는 육상·해상·공중·우주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무기 체계에서 자사 기술을 통합하겠다는 전략의 핵심 축으로 평가됐었다.
독일 정부로선 예산 손실에다 자국 국방력 및 유럽 방위·안보를 강화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독일은 2030년까지 군 현대화에 7800억유로를 투입해 유럽 방위·안보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 하지만 해당 예산안은 헌법적 채무 제한·복지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 등에 부딪힌 상태다. 이 와중에 F126 건조 사업 철회로 20억유로(3조4933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독일의 국방예산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라고 FT는 전했다.